《동아일보가 25일 단독 입수한 국민회의의 내부문서 「DJP권력구조안」은 자민련과의 후보단일화협상에 임하는 김대중(金大中)총재의 「공동집권 구상」이 어떤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차기공동정권의 형태와 운영」 「순수내각제의 문제점과 대책」 「후보단일화를 위한 당면과제」 등 「DJP권력구조안」에 담긴 문건들은 김총재가 의도하는 공동정권의 밑그림은 물론 자민련과의 비공개협상에서 어떤 권력 및 자리배분 논의들이 오고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국민회의의 내부문건에서 드러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권 구상」을 소개한다.》
국민회의 대통령후보 단일화추진위원회의 내부자료에 담겨있는 「권력구조안」을 보면 DJ(김대중총재)의 대권구상이 분명하게 읽혀진다.
현재 자민련과의 「DJP후보단일화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흔히 알려진 국민회의 자민련 공동정권의 개요는 누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대통령 중심제하의 대통령은 2년 또는 2년반만에 끝내고 이후엔 내각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개헌을 언제 하느냐, 내각제를 어떤 형태로 하느냐의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2년 또는 2년반짜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데는 양당의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흥미로운 대목은 국민회의 내부자료 곳곳에 순수내각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이원집정부제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되풀이돼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8월7일자로 작성된 「내각제형태에 관한 검토」라는 문건은 「국민회의 안(案)」으로 각각 프랑스식 핀란드식 독일식내각제를 모델로 한 세가지 내각제안을 제시하면서 프랑스식을 「제1안」으로 꼽고 있다.
「제1안」은 대통령이 국방 외교 통일정책에 관한 권한과 국민투표 회부권, 그리고 의회해산권과 비상대권(의회가 사후 동의) 등 강력한 권한을 갖는 반면 총리는 그외의 내정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다. 이 안은 임기 5년의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제2안」은 대통령은 외교 통일에 관한 권한만 갖고 국방을 비롯한 내정은 총리가 책임지며,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비상대권도 총리의 제청을 거치도록 권한을 분산한 「핀란드식 이원집정부제」를 본뜨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재적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하며 임기 4년에 1회중임하도록 돼 있다.
「제3안」은 대통령이 상징적 국가원수로 남는 순수 의원내각제로 독일식에 가깝다. 대통령은 임기 5년에 1회 중임으로 의회에서 재적과반수 찬성으로 선출한다는 안이다.
「순수내각제의 문제점과 대책―한국적 상황을 바탕으로」라는 부제까지 붙은 또 다른 문건에서는 『최고권력자를 간접선거 방식으로 뽑는 (순수)내각제는 극단적인 경우 유신이나 5공화국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간선제와 같은 체제가 될 수 있다』며 대통령제와 의회제의 혼합, 즉 이원집정부제를 대안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긍정검토」를 강조하면서도 내각제하의 대통령 선출방식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구조안」에는 심지어 이원집정부제와 순수내각제를 권한배분의 정도는 물론 대통령 선거방식이 직선제냐 간선제냐에 따라 구분하려는 시도들도 엿보인다. 「이원집정부제―대통령직선」과 「순수내각제―간선제」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대중총재는 아직까지 내각제 형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않고 있다. 김총재의 언급은 내각제 개헌과 후보단일화협상을 일괄타결하겠다는 것과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친다면 15대 국회 임기내에 내각제 개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정도다.
더더구나 내각제 개헌 후 김총재가 어떤 방식으로 내각제에 참여할 것인지를 미리 얘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회의가 권력구조안에 관한 내부자료를 통해 순수내각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 그것도 대통령을 직선하는 이원집정부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배경엔 내각제 개헌 이후의 「DJ구상」이 숨어있는 지도 모른다. 비록 15대 국회말이나 16대 국회초의 일이긴 하지만 DJP후보단일화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는 김총재의 대선전략으로 볼 때 내각제 개헌 이후의 구상은 「현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당은 25일 제6차 후보단일화협상 회의에서 내각제형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대통령직선방식의 이원집정부제」에 김총재의 내각제 개헌후 구상이 숨어있지 않을까. 실제로 후보단일화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김총재가 아직은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대선(15대)에서 당선된다면 내각제 개헌을 했다 하더라도 그냥 정계은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관심을 잘못 드러낼 경우 「장기집권」을 계획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불을 보듯 분명하기 때문에 극구 자제하고 있을 뿐이라는 시각까지 있다. 최근 국민회의가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김총재가 『금시초문이다. 나도 신문보고 알았다』며 강력 부인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자민련이 단일화협상과정에서 대국민 공동합의문에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2년반」으로 명시하자고 거듭 주장하는 이면엔 2년반 뒤의 내각제개헌을 분명히 하려는 목적과 함께 「DJ의 장기집권」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간선제의 순수내각제를 받아들인 상황에서 JP(김종필·金鍾泌총재)가 정책노선의 차이 등을 이유로 연정(聯政)을 이탈하면 「내각제하의 대통령」까지 꿈꾸는 DJ의 구상이 차질을 빚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통령 직선형 이원집정부제에 미련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자민련의 시각이다.
사실 국민회의 내에선 DJ가 일단 대통령제하의 「2년반짜리 대통령」을 하고 난 뒤 임기가 4년이든 5년이든간에 내각제하의 대통령에 다시 취임, 「통일대통령」이 돼야 한다는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말을 안할 뿐이다.
국민회의 내부문건은 DJ가 「6년반 대통령」 또는 「7년반 대통령」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