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우혜/보름달 보며 생각한 것들

  • 입력 1997년 9월 17일 20시 15분


일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날. 추석은 존재 자체가 그대로 시(詩)인 날이다. 올 추석을 맞아 또다시 귀성하는 사람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요즘은 「경제가 곧 국력」이라고 하듯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천하 만사를 좌우하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돈과 전혀 상관없는 일로 많은 고생을 감수하면서 전국민적인 대이동을 감행했다. 이 얼마나 황홀한 민족의 저력인가. ▼ 민족대이동과 역동성 ▼ 귀성차량들이 내달리는 길에 나서니, 문득 「한국인의 역동성」에 대해 감탄하던 한 외국인이 떠올랐다. 필자가 지난 7월 하순에 취재여행차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에 갔을 때 알마티에서 만난 올리버 교수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한국사와 일본사를 가르치는 역사학 교수인 그는, 자신의 학생들이 일본사보다 한국사에 더 큰 흥미를 보이고 있으며 당연히 수강생도 한국사쪽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그는 그런 원인으로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를 비교해 보면 특히 두드러지는 바 한국인의 역동성은 정말 대단하다. 그 점이 미국 대학생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모양』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역동성」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는 우리 스스로 즐겨 「신명」이라 부르는 요소도 들어 있을 터. 우리 민족의 거창한 추석맞이 민족 대이동에도 역시 그런 신명이 기본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이 국민적인 저력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 때, 우리가 인류사에 기여할 몫은 그 얼마나 거대할 것인가. 최근에 작고한 테레사 수녀님의 숭고한 삶에 대한 감동과 박나리양의 통절한 죽음에 대한 아픔을 안고 오른 귀성길이었다. 12월 대선을 앞둔 추석이라, 예기한 대로 이번 귀성길에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더러는 돌에 새겨두고 싶을 만큼 감명깊었다. 가장 큰 화제는 여당 사상 최초의 대선후보 경선결과를 무시하고 대선가도에 뛰어든 이인제씨였다. 그의 출마와 관련하여 71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치렀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야당의 신세대격인 「어린」세 명의 주자가 벌였던 대선후보 경선은 온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 정치인이 서야 할 자리 ▼ 1차 투표에서는 김영삼씨가 승리했다. 그러나 과반수 미달로 인한 재투표때는 2위였던 김대중씨와 3위였던 이철승씨가 연합하여 1위였던 김영삼씨를 물리침으로써 김대중씨가 대선 후보가 되었다. 김영삼씨는 그런 투표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김대중씨를 위한 지원 유세에 뛰어들었다. 바로 그 모습으로 그는 국민의 뇌리에 큰 정치인으로 각인되었고 그것이 결국 뒷날 그를 대통령자리까지 밀어 간 큰 자산이 되었다면서, 여러 어른들이 당시의 일을 아주 귀한 추억삼아 즐겁게 회상하고 계셨다.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기본규칙을 제대로 지킬 때 지도자와 국민은 같이 영화롭게 되고 함께 발전한다. 이 원칙조차 모르는 정치인이라면 설령 자리를 준다해도 이 역동적인 국민을 바르게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송우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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