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 일각.「反이회창」4人연대 「金心」작용 의혹

  • 입력 1997년 7월 21일 14시 29분


지지부진을 면치못하던 신한국당 「反李會昌」4인 후보들이 20일 전격 연대에 합의한 것을 놓고 당 일각에선 「金心」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각기 2위 당선을 자신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연대만을 고집해온 李漢東 李壽成 金德龍 李仁濟후보가 특별한 「외부」의 자극없이는 그렇게 극적으로 합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金泳三대통령이 4인 연대 합의에 관여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金대통령 의중의 풍향계로 지목돼온 핵심측근 姜三載전사무총장은 20일 자신의지역구 대의원들에게 자유투표를 당부했다. 민주계 원로인 金命潤고문도 『네 후보가 힘을 합친다해도 단순한 산술적 합산을 하면 큰 오차가 있다』며 4인연대에 가담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金瑢泰청와대비서실장도 20일 저녁 기자와 만나 『4인연대 합의를 놓고 「金心」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고 있으나 「金心」은 분명히 엄정 중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4인연대를 극적으로 성사시키는데는 「金心」보다는 徐錫宰 徐淸源 金운환의원 등 민주계 3인방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민주계모임인 정발협의 徐錫宰공동의장은 그동안 중립을 지키다 4∼5일전부터 「反李會昌」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은밀한 움직임을 보였다는게 관계자들의 귀띔. 그는 최근 「反李會昌」연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던 金德龍의원 개인사무실인 덕린재를 찾아가 격려하며 4인연대 참여를 호소했다는 후문. 또한 李壽成후보 선대본부장인 徐淸源의원은 20일오전 金德龍 李漢東의원과 직접 만나 3인연대를 타진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자 『연대를 하지 않고는 李會昌후보를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끝까지 물고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徐의원은 그러나 李仁濟후보를 反李 연대에 합류시키는데 대해 완강히 반대했으나 일부 후보진영에서 『연대를 하려면 李仁濟후보도 포함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막판에 승복했다는게 李仁濟후보측 관계자의 전언. 李仁濟캠프에 참여한 金운환의원도 4인연대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자 지난 19일 서울 합동연설회장에서 李漢東 金德龍 李仁濟 세후보를 밀실에 잡아넣고 『합의볼 때까지 나오지 말라』며 합의를 「강요」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이날 오전에도 4인 후보측 관계자와 만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한데 이어 저녁 金德龍후보를 시내 캐피탈호텔에서 직접 만나 끝까지 합의를 채근했다고 한다. 이어 金의원은 4인연대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진뒤 徐錫宰의원과 별도로 만나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민주계 중진들의 4인연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徐錫宰의원도 곧바로 이날 저녁 金守漢국회의장과 金命潤고문 등 민주계 중진들에게 전화를 걸어 4인연대 합의 사실을 통보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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