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위탁경영진의 실사결과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무려 1조5천억원에 이르는 투자비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진제철소를 짓는다며 금융권에서 빌려간 4조9천7백60억원 가운데 3조4천억원 가량이 실제 투자비로 쓰였을 뿐 나머지는 유용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렇게 빼돌린 거액은 어디로 흘러간 것인가. 일부는 제철소 설계변경 등에 따른 추가건설비와 금융비용 등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관리 이자부담 비효율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그 액수는 5천억원을 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국 1조원 가량의 돈이 증발한 셈이다.
검찰은 지난 2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설비투자에 3조5천9백12억원이 집행됐고 나머지 1조2천5백11억원은 운영자금으로, 2천1백36억원은 계열사 인수 및 설립, 鄭泰守(정태수)총회장 일가의 개인세금, 로비자금 등으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는 다분히 짜맞추기 숫자놀음의 인상이 짙다. 정확한 투자비만 하더라도 앞으로 채권은행단과 재산보전관리단의 의뢰를 받은 회계법인의 정밀실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으며 정총회장 일가가 조성한 비자금 규모도 수사가 진전되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보철강의 투자비 차액 1조5천억원의 행방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한보수사의 핵심이다. 회사자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 규모와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철저히 추적하면 「몸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은 비자금은 부동산 취득 등 은닉재산 구입과 해외 자금도피, 그리고 정(政) 관(官) 금융계의 로비자금으로 뿌려졌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검찰수사결과로도 정총회장이 계열사 운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 수천억원중 1천억원 가량이 개인용도로 유용됐음이 확인됐으며 수시로 수십억∼수백억원의 회사자금을 뭉칫돈으로 찾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현금으로 인출해 갔다.
대형금융비리가 터질 때마다 주된 관심은 부정대출 특혜금융의 배후와 외압의 실체가 누구냐에 쏠렸다. 기업의 자금유용 여부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이번 한보철강의 경우는 자금유용규모가 너무 크다. 자금유용 내용도 한보사태의 본질과 직결돼 있다. 검찰은 물론 채권은행 은행감독원 국세청이 함께 나서 유용자금의 추적에 나서야 한다.
투자비 유용액이 일단 1조5천억원을 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金賢哲(김현철)씨의 2천억원 리베이트설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한 수사도 철저해야 한다. 한보철강이 유용한 돈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은 한보사태를 풀어가는 열쇠다. 그리고 그같은 노력만이 제2의 한보사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