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신화’ 일군 K푸드의 선구자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3-29 03:00수정 2021-03-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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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1965년 롯데서 독립 라면 사업 “우리 입맛 맞고 영양도 충분하게”
안성탕면-짜파게티 등 잇단 히트작 새우깡 등 제품 이름 직접 지어
“거짓없는 최고 품질” 마지막 당부
‘라면왕’으로 불리던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가운데)이 27일 별세했다. 그가 임직원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으로 키워라”였다. 1982년 사발면 출시 당시 신 회장이 시식 중인 모습. 뉴스1
‘라면왕’으로 불린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신 회장의 장례식장에는 각계에서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는 재계 인사와 친인척, 지인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27일에는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28일에는 구자근 국민의힘 국회의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새우깡 CM송을 작곡한 윤형주 씨,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조훈현 국수 등이 조문했다.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사위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지켰다. 고인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 조카인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등 범롯데가 인사들이 모였고, 황각규 전 롯데그룹 부회장과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도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형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회장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도 나란히 조화를 보냈다.

세계 시장에서 K푸드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신 회장은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58년 형인 신격호 회장을 도우며 제과 사업에 뛰어들었고 1963년 라면 사업을 하려다 형의 반대에 부닥쳤다. 결국 1965년 롯데공업(현 농심)을 창업해 형과 결별했고, 형제는 생전에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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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초기 신춘호 회장은 “일본에선 라면이 간편식이지만 한국에선 주식이어야 한다”며 “싸면서도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너구리(1982년 출시) 안성탕면(1983년) 신라면(1986년) 짜파게티(1984년) 등이 히트를 치며 ‘국민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새우깡(1971년) 감자깡(1972년) 등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스낵도 적지 않다.

신 회장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을 직접 작명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신라면의 경우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제품에 회사명을 붙였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쓰지 않아 임원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발음이 편하고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맛’을 그대로 밀어붙인 뚝심으로 K푸드 열풍의 기반을 닦았다. 고인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며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 디자인도 바꾸지 말자”고 했다. 지난해 연간 총 1조 원이 넘는 해외 매출을 거두며 농심은 세계 5위 라면 기업에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옥수수깡’이 고인의 마지막 작품이다. 고인은 유족에게 “가족 간에 우애하라”고 당부했고, 임직원들에게는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신 회장을 오랜 기간 치료해 온 서울대병원에는 감사의 뜻으로 10억 원을 기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낙양 씨와 장녀인 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아들 동원(농심 부회장) 동윤(율촌화학 부회장) 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차녀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5시. 02-2072-2091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농심#신춘호 회장#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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