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말 → 북한말 전환 ‘글동무’로 탈북학생들 말문 트였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도시락→밥곽’ 등 3300개 단어 풀이 앱 만든 제일기획 직원들

지난해 여름, 제일기획의 윤영덕 프로(40·‘프로’는 제일기획 직원의 사내 호칭)는 탈북 학생들과 함께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풋풋하고 자유분방하며 호기심 많은 10대들을 만난다는 설렘은 잠시. 탈북 학생들은 의외로 말이 적었다. 질문을 던지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윤 프로는 이들이 자기 얘기를 잘 이해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의문은 다소 시간이 지난 뒤에 풀렸다. 남과 북의 언어가 많이 다른 탓에 학생들은 단어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질문하기가 창피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탈북 학생들이 느끼는 언어장벽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윤 프로는 “한 학생은 ‘목숨 걸고 넘어왔는데 목숨 걸어도 안 되는 게 있다’며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는 자신을 한탄했고 어떤 친구는 이를 비관해 자살 시도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 여학생이 “고민을 들어 달라”며 건넨 일기장을 보고서 윤 프로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를 빼면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탈북 학생들을 도우려면 먼저 언어장벽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사로 돌아와 당장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정수영(40), 정유나(39·여), 이미수 프로(36·여)가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들은 우선 탈북 학생들이 얼마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지를 알아봤다. 정수영 프로는 “탈북 학생에게 잘 모르는 단어를 형광펜으로 칠해보라고 했더니 조사를 빼곤 거의 모든 단어에 칠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탈북 학생들과의 추가 면담, 전문가와의 상담 등을 통해 제일기획 직원들이 선택한 방법은 사전 형식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제작이었다. “탈북 학생들이 최소한 교과서 내용은 이해할 수 있어야 남한 생활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봤어요. 적어도 같은 출발선에 설 수는 있어야죠.”(이미수 프로)

주된 사용자가 10대라는 점을 감안해 재미있는 요소도 더하기로 했다. 딱딱한 용어 대신 그림을 써서 이해를 높이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단어를 찍으면 바로 북한말로 번역해주는 간편함도 갖췄다. 정유나 프로는 “제일기획이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회사니까 언어 문제는 우리가 가장 잘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앱이 바로 ‘글동무’다. 글동무에는 고교 국어교과서 3종에서 뽑은 단어 3300개의 뜻과 예문 등이 담겨 있다. 예컨대 도시락은 ‘밥곽’, 치킨은 ‘닭유찜’, 누룽지는 ‘가마치’ 등으로 바로 설명하고 추가 설명이 필요한 단어에는 ‘동치미=무로 만든 물김치’처럼 쉬운 예문을 넣었다. 피자 주문 방법 같은 생활상식도 들어 있다. 제작자들은 사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새로운 단어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글동무는 구글스토어(play.google.com)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통일이 되면 적지 않은 탈북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이 새로운 환경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봉사하고 싶다고들 해요. 이런 친구에게 (남한에) 적응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앱이 통일에 기여하는 하나의 도구가 됐으면 해요.”(윤 프로)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글동무#남한말#북한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