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야간산행 2시간… ‘문제아’ 닫힌 마음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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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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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남중 ‘27명 해피드림캠프’ 가보니

19일 경기 퇴촌 서울시학생교육원 퇴촌야영교육원에서 서울 신남중 학생들이 ‘터치 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 쇠말뚝을 밟으며 11m 높이의 통나무 꼭대기에 오른 27명의 학생은 친구들이 잡고 있는 생명 줄을 믿고 뛰어내렸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19일 경기 퇴촌 서울시학생교육원 퇴촌야영교육원에서 서울 신남중 학생들이 ‘터치 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 쇠말뚝을 밟으며 11m 높이의 통나무 꼭대기에 오른 27명의 학생은 친구들이 잡고 있는 생명 줄을 믿고 뛰어내렸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1시간이면 끝날 야간 산행이 2시간으로 훌쩍 늘어버렸다. 지친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9일 오후 8시 경기 퇴촌의 관산에서는 ‘문제아들의 야간산행’이 진행됐다. 서울 양천구 신남중이 올해 들어 담배를 피웠거나 친구를 때려 징계를 받은 27명을 대상으로 19, 20일 연 캠프의 프로그램이다. 이만대 교장을 비롯해 교사 6명이 서울시학생교육원 퇴촌야영교육원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한 캠프에 동아일보 기자가 동행했다.

산행에 앞서 주간에도 여러 프로그램이 열렸다. 11m 높이의 통나무에 박힌 쇠말뚝을 밟고 올라가 공중에 매달린 공을 치며 뛰어내리면 친구들이 생명 줄을 잡아주는 ‘터치 볼’ 프로그램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특별교육이라기보다는 ‘놀이캠프’ 같은 느낌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야영지가 어둑어둑해지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아이들은 예정된 퇴촌 관산으로의 ‘침묵 산행’을 시작했다. 스스로 그동안의 잘못을 돌아보기 위해 대화는 일절 금지됐다.

학교에서는 5분도 가만히 있지 못할 만큼 산만한 아이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각오가 남달랐다. 산행은 정적 그 자체였다. 흙과 돌, 낙엽과 나뭇가지 밟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산새 울음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산행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아이들의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기야 누군가의 웃음이 신호탄이 돼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이 교장은 아이들을 멈춰 세웠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 시간 전에 스스로 한 약속도 못 지켜서야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어?”

이 교장과 아이들은 길을 바꿔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어둠에 묻힌 아이들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착잡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표영수 교사가 “우리, 스스로 약속을 지키자”며 독려했다. 칠흑 같은 어둠. 나무 사이에 걸쳐둔 밧줄을 잡지 않으면 자갈투성이의 급경사를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첫 산행보다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입은 굳게 닫혔다.

오후 10시. 침묵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아이들의 등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2시간의 산행은 아이들을 훌쩍 성장시켰다. 유형우(가명·15) 군은 “열흘 전에 축구 유니폼 등번호가 겹치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친구를 때리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캄캄한 밤에 산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보면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고 말했다.

강성일(가명·15) 군도 “주말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귀찮았지만 막상 와보니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올해 두 차례 폭행으로 문제를 일으켰는데, 돌아가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잘해 봐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말썽을 부리는 문제아도 산속 캠프에서 만나면 아주 달라진다. 한 번의 캠프로 말썽꾸러기를 모범생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친구들과 인간적 관계를 계속 맺다 보면 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신남중은 앞으로도 이런 캠프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 행사는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2만2600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2012 해피드림캠프’ 사업의 일환이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야간 산행#신남중#문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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