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웠던 벤치생활, 지나고 보니 약”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8분


아시안컵 여자배구 ‘베스트 세터’ 수상 이/숙/자

“그때 쉬었던 것이 지금까지 최고참으로서 계속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6일 태국 나콘랏차시마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AVC컵) 여자배구대회 준결승에서 한국이 4년 만에 일본을 꺾은 뒤 만난 이숙자(28·GS칼텍스)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오랜 기다림’에 대한 회한이 숨어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한국의 준우승을 토스했다. 첫 시니어대회 개인상인 ‘베스트 세터상’도 수상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익숙했던 개인상이었지만 시니어에서는 처음 받은 개인상이었다.

그에게는 유독 ‘비운’의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유스, 주니어 시절 때만 하더라도 국가대표팀에서 그는 붙박이 세터였다. 1998년 실업무대에 데뷔한 뒤 그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팀에는 한국 최고의 세터 강혜미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했다.

“벤치에 있을 때 정말 괴로웠어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부모님과 코치 선생님들이 말렸어요. 나를 위해 집을 옮겨 다니신 부모님 생각에 배구를 그만두지 못했어요.”

2005년부터 그는 벤치에서 나와 코트에서 다시 뛰었다.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세터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았던 것은 센터 김세영(KT&G)과의 찰떡호흡이었다. 사실 그동안 소속팀이나 대표팀 등에서 만날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와 호흡을 맞춰본 시간은 불과 일주일.

“저도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어요.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주는데 잘 들어갔어요. 저보다 세영이가 잘해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번 대회에서 그는 배구팬들에게 라이벌 김사니(KT&G)를 능가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아직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사니를 뛰어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모든 세터가 제 라이벌인걸요.”

요즘 그는 배구가 재미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배구가 재미있어졌어요.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나콘랏차시마=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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