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의 상도동 방문은 총재 취임직후인 지난해 9월9일에 이어 두번째. 그러나 이날 두사람의 대면은 서먹서먹함 속에 선문답(禪問答)에 가까웠던 첫번째와는 사뭇 달랐다.
두사람은 5분여가량 날씨 등을 화제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배석자들을 물리치고 50여분간 단독밀담을 나눴다.
이날 밀담은 경제청문회 등 시국대처방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후문이다.
이총재는 “여당이 정책청문회를 하겠다더니 비리청문회로 몰고가려는 것은 문제”라며 “청문회특위의 일방적 운영을 막기 위해 여야동수로 특위가 구성되지 않는 한 청문회에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전대통령은 “정책청문회가 되지 않고 개인을 목표로 해서 공격하기 위한 청문회를 그나마 여당 단독으로 강행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청문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이 최근 ‘구정권 비리설’을 주장한데 대해 “비리가 있으면 검찰이 수사하면 될 일 아니냐”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앞서 두사람이 주고받은 인사말, 특히 김전대통령의 발언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배어있는 ‘뼈있는 말’의 연속이었다.
먼저 이총재가 “건강이 어떠냐”고 묻자 김전대통령은 “여러 사람들이 날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나는 요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다. 다음날 아침에 눈이 떠지면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하루를 지낸다”고 덧붙였다.
이총재가 “새해에는 새로운 일, 좋은 일이 많길 바랐는데 잘 안되고 있다”고 말하자 김전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우리의 50년 역사가 그랬듯이 영원히 국민을 속이지는 못한다. 진실을 오도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총재측은 이날 예방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한 측근은 “말수가 적은 두사람이 50여분간 얘기했다면 분명 밀도있는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고 말했고 또다른 인사는 “정국대처방안과 관련, DJ를 잘아는 김전대통령의 우호적 조언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전대통령은 이날 이총재가 떠날 때 지난번과는 달리 대문앞까지 나와 이총재를 배웅했고 “오늘 대화가 어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눴다”며 웃었다.
〈문 철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