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극복 지도자/대처 前英총리]여성 특혜부여 입법반대

  • 입력 1997년 11월 28일 20시 20분


마거릿 대처여사가 총리직에 오른 지 약3년만인 82년4월. 아르헨티나가 자신들의 옛 땅을 찾겠다며 예고도 없이 영국령인 포클랜드섬을 점령했을 때였다. 대처총리는 일생일대의 가장 어렵고도 중대한 결단의 순간을 맞아야 했다. 당시의 상황은 영국에 불리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외교적 입장 때문에 중립을 고수했으며 소련은 아르헨티나편을 들고 나섰다. 더구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다. 대처는 『만약 아르헨티나의 군사행동을 용인한다면 포클랜드를 잃게될 뿐만 아니라 소련이 다른 국가들의 군사행동을 부추길 것이고 냉전이 심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군사대응을 결정했고 8주간의 전쟁끝에 승리했다. 대처는 퇴임 후 회고록에서 『포클랜드전쟁은 총리재직시 경험했던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경험은 이후 영국재건과 경제난국을 헤쳐나가는데 큰 힘이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타협을 하는 것이지만 타협에는 물러설 수 없는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와 선견(先見)입니다』 이 신념은 그가 야당당수와 11년동안 총리에 재임하면서 영국을 되살린 불굴의 신념이었다. 식료품잡화상의 딸로 태어나 여성 총리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역정은 한마디로 남성위주의 기득권층과 끝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명문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두번 낙선한 끝에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자신이 믿은 것이라곤 『오직 능력과 노력 근면 고집 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대처는 냉혈인간처럼 차갑고 완고하다는 의미로 「철의 여인」(아이언 레이디)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탄광노조가 두손을 들고난 뒤 빈정거리며 붙여준 이름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래. 지금 영국은 아이언 레이디를 필요로 한다』며 거침없이 맞받았다. 물론 대처는 굴종을 요구할뿐 합의를 무시했으며 용서를 모르는 인물이었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 최초의 여성총리이면서도 여성에겐 인색했다는 점이다. 『시골상인의 딸이 영국총리가 됐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여성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입법에 반대했다. 11년간 여성장관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토니 블레어 현 노동당정권이 절반 가량 여성각료를 임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런던〓이진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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