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할머니 本報단독회견]캄보디아서 「고독의 54년」

  • 입력 1997년 6월 15일 09시 26분


지난 1943년 일본군에 의해 캄보디아에 끌려온 뒤 54년째 이국땅에 살고 있는 「훈」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할머니(73)는 첫눈에도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한국할머니였다. 「엄마」 「아버지」 「진동」 등 한국말이라고는 단 몇마디밖에 할 줄 몰랐지만 「한핏줄」이라는 느낌은 긴 말이 필요없었다. 그가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은 백마디 말보다도 지나온 세월의 고난과 아픔을 더 잘 설명해주었다. 14일 밤 훈할머니는 큰외손녀 시나(27)와 막내 외손녀 시놈(17·고교생)과 함께 현재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서 80여㎞ 떨어진 프놈펜까지 나와 한국기자로서는 처음으로 본보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프놈펜 중심부 키리롬식당에서 기자와 만난 훈할머니는 감개무량한 듯 이야기도중 기자의 손을 잡고 『만나서 기쁘다』 『반갑다』는 말을 몇번씩 반복했다. 훈할머니가 기억해낸 한국에서의 자신의 이름은 창씨개명한 「하나(花)」.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가 고향인 진동에서 면 사무보조원을 했다는 사실과 1남3녀 중 자신이 차녀였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그러나 성은 끝내 생각해내지 못했다. 훈할머니는 일본경찰에 의해 다른 처녀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끌려온 뒤 일본군 병영을 전전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당시 일본군 중위였던 다다쿠마 쓰토무(只熊力)를 만나 그때부터 그의 현지처 역할을 했다는 것. 훈할머니는 다다쿠마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이 「나미」였으며 둘 사이에 「오니」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딸 오니는 지난 94년 48세로 병사했으며 시나와 니카(19) 등 딸만 넷을 뒀다. 훈할머니는 다다쿠마가 떠나고 캄보디아에 혼자 남게 되자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캄보디아인과 결혼해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아들은 폴 포트정권의 대학살때 죽었다. 현재 훈할머니는 프놈펜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수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외손녀딸과 외손녀사위 등의 부양을 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다. 훈할머니의 가장 큰 희망은 죽기전에 고향마을인 진동에 한번 가보는 것. 그러나 한국말도 전혀 못하는데다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어 혈육을 만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프놈펜〓정동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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