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1993년 ‘도하의 비극’을 꼽는다.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종료 20초 전 이라크 선수가 동점골을 넣는 순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골로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모리야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괴롭고 슬픈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그 후로 나를 지탱해 왔다”고 돌이켰다.
▷한국에서는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경기가 모리야스 감독에게 각별한 건, 그가 선수로서 유일하게 출전한 월드컵 예선전이었기 때문이다. 모리야스 감독은 국가대표가 되긴 했지만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 명문고 출신도 아니었고, 실업팀에 입단할 때도 마지막 순번으로 지명됐다. 실업팀 감독이 “빠르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으며, 강하지도 않다”며 지명을 망설였다는 후문도 있다.
▷실업 선수가 된 후에도 2년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오전에 회사에서 일하고 오후에 축구 연습을 하며 실력을 키워 3년 차에 주전이 됐다. 이후 17년 동안 357경기에 출전했지만 주로 팀을 떠받치는 살림꾼 역할이었다. 2004년 지도자 변신 후에도 유소년 코치로 시작해 8년 만에야 자신이 선수로 뛰었던 구단의 감독이 됐다. 누가 봐도 ‘잡초형’에 가까운 커리어다.
▷2018년 일본축구협회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그를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지명하자 일본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J리그 우승을 3차례 이끌었지만 외국인 명장도, 축구 명문대 출신도 아닌 고졸 비주류 감독이 해외파 스타 군단을 이끌 수 있겠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협회는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맡기며 그에게 미래를 걸었다. 모리야스 감독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연파하며 그 믿음에 답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고 전술에 적극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한 유럽 빅리그 선수들로부터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새벽 몇 시든 소속팀으로 복귀하는 선수를 직접 호텔 로비에서 배웅하는 인간미도 있다. 다만 시간 준수, 동료 비방 SNS 금지, 내부 갈등은 내부에서 풀기 등 세 가지 원칙만큼은 흔들림 없이 지킨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일본은 튀니지를 꺾고 네덜란드, 스웨덴과 비기며 무패로 32강에 진출했다.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자리를 모리야스 감독이 발굴·육성한 젊은 선수들이 메웠고, 그 과정에서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역경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비주류로 살면서 겪은 실패와 역경이 그를 ‘역전 감독’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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