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은 AI 관련 기업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고, 막대한 투자 대비 실질적인 수익성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불안을 뜻한다. 지난해 이 우려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들며 글로벌 투자자들을 긴장시켰다. 특히 AI 설비투자 경쟁이 촉발시킨 ‘반도체 슈퍼사이클’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한국 경제 전망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긴 어렵다. 거품이 실재한다면 결국 터져야 ‘그게 거품이었구나’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측도 엇갈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감하게도 ‘AI 거품은 존재하고 올해 터질 것’이라는 자체 전망을 내놨다. AI 전환이라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수익모델이 여전히 안갯속이라 주가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월가는 “AI 설비투자는 계속된다”
실제로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AI 과열을 우려한다. AI 투자가 각국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고, 여기에 경제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면 곧장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비관적 경고도 나온다. 하지만 미 월가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주가 조정은 있을지언정 AI 설비투자 붐은 올해에도 지속된다는 것이다. 지난 3년은 금광으로 가기 위해 철도를 건설하는 인프라 경쟁이었고, 이제는 ‘누가 진짜 금광을 찾았나’ 깐깐하게 수익성을 검증하는 단계에 왔다. 그래도 ‘골드러시’는 계속된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통신이 종합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대체적 전망도 그렇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즉각적 AI 거품론은 과장됐고, AI 투자는 지속될 것”, HSBC는 “AI 거품은 걱정하지 않지만 단기적 시장 하락은 있을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AI 설비투자는 계속되겠지만 주가 변동성은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가의 앞날은 모르지만, 빅테크가 설비투자를 줄이지 않는 이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이어질 것이다. 공장 투자도 늘어서 반도체 공장이 있는 지역 경제도, 반도체 협력사들도 새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I 거품론보다 무서운 ‘위기 무감각’
전반적인 시장의 낙관론 덕에 AI 사이클에 올라탄 우리 증시도 새해 연일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인 시장과 달리, 실물 경제의 최전선에 있는 재계는 낙관론보다 절박감에 더 가깝다. 2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2%포인트씩 쪼그라들어 이 속도라면 2030년엔 성장이 사라지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서운 일”이라는 그의 표현에는 성장 중심의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AI 호황에 가려진 한국 경제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마지막까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 싸운 제조업 전사로 남겠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노동 경직성이나 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얘기하면 이제는 ‘고장 난 라디오, 철 지난 유행가’ 취급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말을 안 한다”고 말했다. 미래를 우려하는 기업인들이 늘어나면 고용에도 인색해지고, 이는 청년 취업률 악화로도 이어진다.
AI 거품론보다 위기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일지 모른다. 재계의 경고음을 계속해서 지나치며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언젠가 AI 붐이 잦아든 자리에 남는 것은 기초체력을 잃고 식어버린 우리 경제의 민낯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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