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적 정부’의 역할… “정부 R&D 지원 10% 늘면 민간투자 5~6% 증가”[박재혁의 데이터로 보는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6일 23시 09분


혁신 사업에 공공 참여 놓고 논란… 정부 지원은 민간 R&D 투자 촉진
고위험 보완하며 혁신 마중물 돼… 美 특허 보면 기술 발전에도 기여
인터넷, GPS 등도 정부 지원 산물… 혁신에서 정부 역할 재정립해야

《정부 지원은 기술 혁신 촉진할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인공지능(AI) 산업에 국부펀드가 투자하고 그 지분을 소유하는 방식을 언급하며 혁신 사업에 공공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러한 주장이 ‘반기업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기술 혁신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시장 실패의 보완’이라는 소극적 역할로 제한한 관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혁신 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이에 따른 보상은 기업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기술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R&D 지원으로 탄생했다. 예컨대 인터넷은 미국 국방성 내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지원으로 처음 개발됐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은 미 해군의 지원을 받았다. 구글의 초기 알고리즘도 미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됐다. 이러한 혁신 기술은 성공 시 막대한 사회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높은 실패 위험으로 인해 민간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정부의 R&D 지원은 국가의 중장기적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최근 국가혁신시스템 연구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단순한 시장 실패의 수정을 넘어 새로운 혁신 영역을 발견하고 육성하는 ‘기업가적 정부’로 재정립하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정부가 벤처캐피털처럼 혁신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친시장적이다. 정부가 혁신 생태계 조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본 참여자들 중 하나인 것이다. ‘기업가적 정부’의 역할을 보여주는 두 연구를 소개한다.

첫 번째 연구는 정부 지원이 민간 R&D 투자를 촉진하고, 특정 산업의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연구는 정부 지원이 기술 복잡도 증대에 기여하며, 이는 경제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첫 번째 연구(연구①)는 정부의 R&D 지원이 민간기업의 R&D 투자를 촉진하는지, 아니면 되레 감소시키는지에 대한 실증 분석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산업별 데이터와 프랑스 기업 데이터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정부 R&D 지원이 10% 증가할 때 민간 R&D 투자는 평균 5∼6% 증가하는 ‘크라우딩 인’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2002년 미 항공우주 산업의 경우 30억2600만 달러(약 4조4000억 원)의 정부 국방 R&D 지원은 19억4800만 달러의 민간 R&D 투자 증가를 유발했다. 미국 전체로 보면, 정부의 국방 R&D 지원이 없었다면 민간 R&D 투자는 850억 달러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의 R&D 지원, 특히 국방 분야 지원이 특정 산업의 혁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과다.

프랑스 기업 데이터의 경우 정부 보조금 수혜 후 민간의 크라우딩 인 효과가 산업별로 명확하게 차이를 보였다. 이는 특정 산업 내 기술 확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정부 지원과 기술 발전도 간의 관계를 미 특허청(USPTO)의 1981∼2016년 특허 데이터를 사용해 분석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기술 특허는 계속 증가했다. 특히 561개 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가장 복잡도가 높은 기술 그룹에서 정부 R&D를 인용했거나 정부가 자금 지원했거나 정부가 소유한 특허 수가 많고, 복잡도가 낮아질수록 정부가 지원한 특허 수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정부가 복잡하고 위험도가 큰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지원은 민간의 특허 출원을 촉진했고, 이는 기술 복잡도 증가로 이어졌다.

두 연구는 정부 R&D 지원이 혁신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가 주도 혁신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정부는 명확한 공공 목표를 설정하고, 중장기적인 혁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한다. 구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도 저서 ‘더 커밍 웨이브’에서 AI와 같은 혁신 기술 관리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자체 전문성 확보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AI 관련 논의가 활발하지만, 정부 내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구체적인 정책 수립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는 핵심 분야에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정책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 세금을 활용한 정부 혁신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려면 국가 기술 어젠다를 기반으로 투자해 혁신에 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동시에 그 성과를 투자의 주체인 국민들과 함께 공정하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연구① Enrico Moretti, Claudia Steinwender, John Van Reenen. “The intellectual spoils of war? Defense R&D, productivity, and international spillovers.”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107.1 (2025): 14-27.

연구② Carolin Nast, Tom Broekel, and Doris Entner. “Fueling the fire? How government support drives technological progress and complexity.” Research Policy 53.6 (2024): 10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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