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조은아]‘35세 총리’ 배출시킨 佛 정치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6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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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키우는 佛 정치, 최연소 총리 배출
韓도 시급한 개혁, 젊은 정치인들이 주도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유럽 언론들은 연초부터 프랑스 젊은 정치 스타의 탄생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달 9일 프랑스 공화국 역대 최연소 총리로 임명된 가브리엘 아탈(35). 그가 자주 입는 남색 양복의 특징이나 옛 동성 연인과의 인연까지 깨알같이 보도된다. 현재의 화제성만 놓고 보면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자나 웬만한 아이돌도 제친 분위기다.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이자 부르주아라는 반감이 있기는 하다. 성공한 영화 제작자이자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파리 명문 사립고교와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시앙스포)를 졸업하며 윤택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탈 총리는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1일 프랑스 일간 레제코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탈 총리의 신뢰도는 32%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신뢰도(25%)보다 7%포인트 높다. 전임자인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의 취임 당시 지지율(27%)보다도 5%포인트 앞섰다. 기성 정치인들보다 젊은 에너지로 교육 개혁을 이뤄냈단 평가가 많다.

아탈 총리는 이런 기대감에 호응하듯 총리 취임 뒤 첫 과제였던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를 낸 비결로는 탁월한 소통 능력이 꼽힌다. 그는 일찍이 유려한 화술로 주목받아 ‘언어의 저격수’로 불렸다. 소통 기술의 포인트는 노동계나 교육계가 자주 쓰는 표현을 자신의 연설에 넣는 것이다. 국민들이 ‘총리가 우리 요구를 경청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려는 취지다. 아탈 총리는 경청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직접 농촌을 찾았고, 이 모습은 그의 소셜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솔직하고 소탈한 점도 대중의 마음을 사고 있다. 10대 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다소 창피할 수 있는 경험도 털어놨다. 총리에 지명된 직후 외교장관에 발탁된 스테판 세주르네와 과거에 동성 연인이었던 사실도 공개했다. 3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건 행운이고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고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아탈 총리의 내공을 키운 건 청년 정치를 적극 받아들이는 프랑스 정치의 토양이다. 그가 사회당에 입당하며 정치를 시작한 건 17세 때다. 한국과 달리 각 정당이 가입 연령을 재량껏 내규로 정하니 가능한 일이다. 사회당은 만 15세 이상 청소년이면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

정당마다 활성화된 청년 조직도 한몫했다. 아탈 총리는 2010년 사회당 청년조직 소속으로 파리정치대 지부 대표 선거에 출마해 학습의 기회로 삼았다. 중도 성향 르네상스의 ‘마크롱과 함께하는 청년들’, 극우 국민연합(RN)의 ‘청년 국민연합’ 등 정당마다 탄탄한 청년 조직이 청년 정치인들의 인큐베이터가 되고 있다.

정치 제도뿐 아니라 문화도 청년에게 열려 있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유능한 청년이라면 다른 진영이어도 받아들인다. 실제 아탈 총리는 정치 입문 초기에 진보 성향 사회당에서 10년간 활동하다 탈당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한 중도 성향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에 합류했다. 지난해 마크롱 2기 내각의 교육부 장관 때는 중도 성향인 르네상스 소속이었지만 전통 보수인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그가 한국에서 정치를 했다면 ‘철새 정치인’ 혹은 ‘우클릭’이란 꼬리표가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프랑스 하원 의원 평균 연령은 2012년 54.6세였지만 2022년 총선 때는 48.5세로 낮아지며 또 다른 아탈의 출연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58세인 한국보다 10년가량 젊다. 아탈 총리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젊은 정치인들이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이기도 한 노동·교육 개혁을 주도하며 낡은 정치를 바꾸고 있다는 걸 우리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프랑스#젊은 정치 스타#가브리엘 아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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