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 속의 비탄[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8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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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서 슬픔을 위로받을 때가 있다. 슬플 때 슬픈 노래나 이야기를 찾는 이유다. 마이클 프레임이라는 수학자가 ‘수학의 위로’에서 슬픔을 다루는 방식에는 묘하게 사람을 위로하는 구석이 있다.

슬픔은 우리말에서는 다양한 슬픔을 총칭하는 말인데, 프레임 교수는 그것을 비탄(grief)과 슬픔(sadness)으로 나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는 슬픔은 비탄이고, 감정적 무게가 수반되지 않는 가벼운 것은 슬픔이다. 그의 관심은 비탄에 있다. 언젠가 그는 어떤 학생에게서 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썼다. “중력은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해요. 눈송이도요. 가을에는 낙엽도요.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눈에서 눈물도 흘러내리게 했지요.” 상실로 인해 숨이 안 쉬어지고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에이는 상태, 바로 이것이 그가 말하는 비탄이다. 비탄은 깊고 깊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비탄으로부터 회복되는 길은 있을까. 그가 생각하기에는 없다. 어머니는 계속 죽은 채로 있을 것이다. 비탄 속에는 비슷한 유형의 “더 작은 비탄들”이 있다. 기하학에서 말하는 “자기 유사성”의 원리랄까. 예를 들어, 어머니의 음성을 들을 수도, 밥을 같이 먹을 수도, 껴안고 껴안아질 수도 없다. 삶은 어머니가 있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뉘어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삶은 어떻게 재조정될까. 모를 일이다. 상실과 비탄은 혼자서 속으로 견디는 것이니까. 사랑이 “가장 사적인 경험”이니 비탄도 사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섣부른 위로의 말이 비탄에 잠긴 사람에게 통하지 않는 이유다. 그저 그의 말을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는 거다. 언젠가 비탄의 에너지 중 일부가 밖으로 투영되어 세상을 새롭게 보는 문을 열어젖힐 수도 있으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슬픔#비탄#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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