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예찬[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83〉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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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추상적인 소리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른 예술 장르는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경지다. 그래서 월터 페이터의 말처럼 “모든 예술은 끊임없이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동양의 이솝우화라 불리는 ‘열자(列子)’에는 그러한 음악 이야기가 나온다.

진청(秦靑)과 설담(薛譚)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제자는 어느 정도 노래를 하게 되자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고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스승은 말리지 않고 큰길까지 나가 제자를 전송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어찌나 슬프던지 숲이 일렁거리고 흘러가던 구름이 멈췄다. 제자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닫고 곁에 남아 더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스승에게 간청했다.

스승은 그에게 한아(韓娥)라는 뛰어난 가객에 관한 얘기를 해줬다. 언젠가 그 가객이 어떤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노래를 해줬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사흘이 되어도 여운이 남았다. 그가 아직도 가지 않고 노래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 집의 대들보에도 소리가 밴 것 같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가 어떤 여관에 들렀을 때다. 사람들이 그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자 그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들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사흘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울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를 뒤쫓아가 찾아내 사과하고 데려왔다. 그가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이 슬픔을 잊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춤을 추었다. 목소리로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 것이다.

숲이 일렁이고 흘러가던 구름이 멈추고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대들보에도 소리가 배게 하는 힘. 조금은 과장이겠지만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면 그렇게 된다는 비유다. 소리 하나만으로 기쁨과 슬픔을 추상적으로 재현해내고 위로와 치유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음악의 기적, 그것은 모든 예술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경지다. 우리가 음악에 때로 기대는 것도 그 놀라운 힘 때문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음악 예찬#음악#열자#동양의 이솝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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