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터널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남성의 모습. 청년 주거위기와 사회적 고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짐은 백팩 하나였다. 밤에는 PC방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카페와 편의점을 전전했다. 일정한 집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을 ‘노숙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시원과 무보증 월세방, 시설과 지인 집을 오가며 불안정한 주거 상태에 놓인 ‘노숙위기청년’ 문제가 새로운 청년 주거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연세대 연구진과 함께 진행한 ‘노숙위기청년 실태조사 및 자립안전망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신한은행과 함께 추진 중인 ‘주거위기청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만 18~34세 청년 1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거주 형태는 고시원·무보증 월세 등 불안정 거처가 59.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이용시설 17.6%, 거리생활 17.1%, 생활시설 5.3% 순이었다. 여기서 이용시설은 식사·샤워·단기 보호 등을 제공하는 일시보호시설이나 쉼터를, 생활시설은 장기 거주하며 자활·재활을 지원하는 상주형 시설을 뜻한다.
연구진은 청년 주거위기가 전형적인 거리 노숙보다 불안정 거처와 시설 이용 형태로 더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기존 노숙 통계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은폐형 주거위기’ 청년층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리생활 집단에서는 남성과 20대 비중이 높았다. 남성의 거리생활 비율은 24.1%로 여성(11.5%)보다 2배 이상 높았고, 20대는 20.7%로 30대(10.8%)보다 높게 나타났다. 별거·이혼 상태(66.7%)나 동거 경험자(50.0%)에서 거리생활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등 가족관계 불안정과 거리생활 위험 사이 연관성도 확인됐다.
사회적 고립도 심각했다. 응답자의 63.1%는 가족·친척과 한 달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는 응답도 35.3%였다. 특히 거리생활 청년의 경우 가족 단절 비율은 81.3%까지 올라갔다.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다. 최근 한 달 소득이 100만 원 이하인 응답자는 66.9%였다. 응답자의 54.5%는 임시·일용직에 종사하고 있었고, 79.7%는 부채를 안고 있었다. 3000만 원 이상 고액 부채 비율도 22.1%에 달했다.
건강 상태도 취약했다. 조사 대상자의 절반 가까이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나쁨’ 또는 ‘매우 나쁨’이라고 답했다.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에 가지 않고 참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2.2%였다. 수면장애(71.2%), 무력감(66.9%), 외로움·무기력(66.3%), 우울감(65.3%) 등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비율도 높았다.
보고서는 현재 청년 주거정책과 노숙 지원 체계 모두 이런 청년들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청년 주거정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나 가족 기반을 전제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반면 노숙 지원 체계는 중장년 거리생활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고시원·무보증 월세·시설 등을 전전하는 청년층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과 단절된 청년 상당수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도 독립 가구로 인정받지 못해 공공 지원 체계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청년 정책과 노숙 정책 사이에서 노숙위기청년이 배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노숙 상태’라고 인식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낙인 우려 때문에 지원 체계 접근 자체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 실태 파악을 넘어 ‘주거 우선’ 방식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안정적인 거처를 먼저 제공한 뒤 심리 상담과 의료·생활·취업 지원 등을 연계하는 방식이 청년들의 자립 기반 형성에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송아영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 통계와 정책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노숙위기청년의 삶과 주거 현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며 “청년들의 상황을 반영한 정책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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