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 한국인 대학생이 화제가 됐다. 한국 국적 유학생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하버드대의 ‘소피아 프로인트’ 상을 받은 경제학과 진권용 씨다. 이 상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법률가 맥스 프로인트가 1964년 어머니 소피아를 기리기 위해 거액을 기부하면서 제정됐다. 최우등 졸업생 중 최고 학점자에게 주어지는데,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계산할 정도로 엄격하게 수상자를 가린다.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진 씨의 학점은 4.0이었다. 전 과목 만점은 그해 졸업생 1552명 중 두 명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 상을 무려 55명이 받았다. 모두 만점이어서 소수점을 따질 수도 없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빚어낸 결과였다. 실제 2005∼2006학년도 하버드대 학부생 중 ‘A’학점(‘A-’ 제외)을 받은 비율은 수업별로 약 25%였는데, 2024∼2025학년도는 60%에 육박했다. 서서히 상승하다 온라인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 팬데믹 때 껑충 뛰었다고 한다.
▷성적 변별력 문제는 하버드대 교수진이 이미 3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논의해 왔다. 그러다 더는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올해 ‘과목당 A학점 20% 이하’라는 개편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단 A-를 포함해 이하 학점은 제한이 없다. 성적 제한제는 최근 이 대학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한 이메일 투표에서 70%의 찬성률로 가볍게 통과했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앞서 2월 학부생 대상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94%가 반대했지만, 교수들의 결심을 바꿔놓기엔 역부족이었다. 2027∼2028학년도부터 A학점을 받으려면 5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물론 하버드대가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성적 제한제가 교육적으로 무조건 ‘옳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버드대가 벤치마킹했다는 프린스턴대는 2004년 A계열 학점(A+, A0, A-) 비율을 35% 미만으로 강제했는데, 취업 시장에서 타 명문대보다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이 커지면서 2014년 정책을 백지화했다. 또 세계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하버드대인데, A학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지 않겠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학교 측도 그래서 우선 3년만 제도를 운영한 뒤 재평가를 하기로 했다.
▷학점 인플레이션 논란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 기준 A계열 학점 비중은 서울대가 63%, 연세대와 고려대도 각각 60%, 58%로 절반이 훌쩍 넘는다.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서강대에서도 40%에 이른다. 채용 시장에서 고학점을 필살기로 쓰던 시대는 지났다지만, 대학 교육에서 경쟁이 점차 느슨해지다 보면 학문에 대한 열의도 함께 식을까 우려스럽다. 세계 최고 대학도 어떤 방향이 옳은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성적 평가다. 학생의 실력과 노력을 공정하게 가려주는 평가 제도는 입시만이 아니라 대학 교육에서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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