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음악[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80〉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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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면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도 판단력이 흐려진다. 음악에 대한 공자의 태도가 그랬다. 그는 악기를 타며 노래를 즐기고 노래도 만들던 음악의 장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고집했다.

사마천의 ‘사기세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독단적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가 나온다. 그가 쉰한 살이었을 때다. 그는 노나라의 임시 재상(宰相) 일을 보고 있었다. 이웃에 있는 제나라는 노나라가 공자처럼 유능한 책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꼈던지 사신을 보내 우호를 다지자고 선수를 쳤다.

두 나라의 정상이 만났을 때 제나라는 그 자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창과 칼과 방패를 들고 요란한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변방의 무악(舞樂)이었다. 그러자 공자가 발끈했다. “두 군주께서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에서 어찌 오랑캐의 음악을 연주하게 합니까!” 그래서 애써 준비한 음악은 도중에 끝났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제나라에서는 궁중 음악을 연주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광대와 난쟁이가 앞으로 나와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공자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제후를 미혹되게 하는 자는 죽여야 합니다. 담당관에게 명하십시오.” 담당관은 그 말에 단칼에 그들을 죽였다. 제나라 제후는 자기 나라의 도의가 부족한 것을 한탄하며 돌아갔다.

공자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통한 일이었다. 공자는 무악을 중지시키고 급기야 광대와 난쟁이를 죽이라고 했다. 천박하니까 그래도 된다는 독선적 사고였다. 그것은 고전음악만 중시하고 록이나 트롯은 음악도 아니라며 내치는 격이었다. 그러고 보면,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에게는 음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공자의 부르주아적인 음악관을 비판하고 비악(非樂) 즉 음악을 금지한 묵자가 훨씬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 타자에 대한 윤리성이 음악에도 필요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공자#음악#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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