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스포츠세탁 도구 논쟁[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5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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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로 간 호날두, 인권단체로부터 스포츠세탁 도구 비판받아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정치적 이슈 늘어나는 추세지만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답하기 어려운 상황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 여부 논란 속 개인에게까지 답변 요구받은 드문 사례, 그의 답변 따라 평판 시험대에 올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포르투갈)가 국제 인권 문제와 관련한 미묘한 상황에 빠졌다. 그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최근 연봉 27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받기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로 이적한 호날두는 입단식에서 한 말 때문에 곧바로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비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 구단 입단식에 참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도착한 호날두. 리야드=AP 뉴시스


●국제엠네스티의 호날두 스포츠세탁 도구 비판
지난 4일 호날두가 입단식을 치른 뒤 5일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 중동 연구원 다나 아흐메드가 성명을 냈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호날두의 알 나스르 입단은 넓은 의미의 ‘스포츠세탁(sportswasing)’에 해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호날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활동하는 것을 이용해 그 나라의 끔찍한 인권 문제에 집중됐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호날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무비판적인 찬사를 보내지 말고 상당한 대중과 공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의 위치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는 데 써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살인, 강간, 마약밀수 범죄자를 주기적으로 처형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루에만 81명이 처형된 적도 있다. 그들 대다수는 극도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인권 및 여성운동가, 다른 정치인들을 중형에 처하며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 호날두는 그의 명성과 유명인의 지위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세탁’ 도구로 이용되도록 놔두지 말아야 한다. 그는 알 나스르에서 활동하는 기간 이 나라의 수많은 인권 문제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과거 논란
‘스포츠세탁’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단체나 국가가 스포츠 행사를 통해 팬들과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미지를 좋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포츠세탁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운용자산만 76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펀드(PIF)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을 인수하려 했을 때도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가 이를 비판하며 제동이 걸린 바 있다.

당시 PIF를 이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한 배후로 의혹을 받는 등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인권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같은 의혹을 일축했고, 2021년 PIF는 영국계 인사와 컨소시엄을 꾸려 뉴캐슬을 인수했다. EPL 사무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뉴캐슬 운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밖에도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F1 대회를 유치하고 골프대회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에게 스포츠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더 많은 스포츠 경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스포츠를 통한 국가 이미지 세탁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입단식에서 알 나스르 유니폼을 입고 걸어가고 있는 호날두. 리야드=AP 뉴시스
●엠네스티 반응을 불러온 호날두 입단식 발언
호날두는 입단식에서 “나는 여러 구단과 계약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놀라운(amazing) 나라가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구단으로 오기로 했다”며 “나는 이 구단과 나라에 남다른 비전을 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기회를 잡은 이유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의 성명서는 호날두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한 대응이었다. 호날두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분야에 이바지하겠다고 발언한 점에 맞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에 눈 감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같은 호날두의 행보는 2년 전 모습과 비교된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관광 홍보에 동참하는 대가로 600만 유로(약 80억 원)를 호날두에게 제안했으나 호날두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호날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에 연루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계에서 늘어나고 있는 인권과 정치 이슈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점점 더 자주 인권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난해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당시 미국이 올림픽 개회식에 불참한 ‘외교적 보이콧’을 진행한 일이다.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들은 보내되 개회식에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중국이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며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았다. 선수들에게는 경기에 참여해 메달을 딸 기회를 주되, 외교사절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중국이 기대했던 베이징 올림픽 선전 효과를 감소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속에 여러 올림픽 후원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마음껏 올림픽 홍보 행사를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권 문제가 세계 여론에 오르내리는 등 여파가 상당했다. 이어 지난해 말 열렸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카타르 월드컵경기장 건설에 동원됐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을 둘러싸고 인권 문제가 제기됐다.

2021년 6월 독일과 헝가리의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둘러싸고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헝가리가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등에서 동성애 묘사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자 독일 및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이 법안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다며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 장소였던 독일 뮌헨시 측에서 경기장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포용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을 비추려고 하자 헝가리가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인다며 반발했다. 결국 유럽축구연맹(UEFA)이 중재에 나서 경기장에 조명을 비추지 않도록 하면서 경기는 진행됐다. 대신 UEFA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 등에 무지개 문양을 넣는 등 간접적으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포용 정책을 옹호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처럼 지난 몇 년 동안 진행됐던 대표적인 국제 스포츠 행사들에서는 인권 문제가 제기된 적이 많았다. 세계 각지에서 인권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스포츠 행사의 주목도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이 겹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대규모 스포츠 행사에서는 각종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지닌 이슈들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한 논쟁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찬반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호날두의 유니폼을 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축구팬. 리야드=AP 뉴시스
●완화되고 있는 스포츠의 기계적 정치 중립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동안 스포츠와 정치를 철저히 분리해 왔다. IOC 헌장 50조는 선수들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동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정치 행위를 허용할 경우 순수한 스포츠 대결이 아닌 이념의 대결이 벌어지기 쉽고, 이는 평화적 중립 지대라는 스포츠의 위상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스포츠의 생존을 위협할만한 요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스포츠 행사에서 더 많은 의사 표현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꾸준히 있었다. 또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한 것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갈등을 빚었을 때도 IOC가 철저히 일본 편을 들며 침묵한 데서도 드러났듯 IOC 자체도 완전한 정치 중립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논란 속에서 스포츠 역시 보다 나은 가치와 세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제한된 형태로라도 선수들에게 정치적 발언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 때문에 IOC는 도쿄 올림픽에서 IOC 헌장 50조를 일부 완화해 경기 개시 전이나 기자회견 등에서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일부 가능하도록 했다. 스포츠와 정치의 기계적 분리는 조금씩 완화되는 분위기다. 이제는 선수들이 경기 전 인종 차별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

●선수 개인에게로 까지 확산되는 정치 이슈
하지만 호날두의 경우처럼 개인에게 한 국가의 인권 문제에 대해 발언해 달라고 공개 요청이 들어간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경기장 밖에서 인권 문제를 둘러싼 정부 혹은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고, 선수단이 행동에 나선 적은 있지만 선수 개인을 특정해 이 같은 이슈가 불거진 적은 드물었다.

지금까지는 현역 스포츠 스타들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왔고, 한때는 그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호날두는 정반대의 상황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선수단이나 팀이 아닌 선수 개인에게까지 정치적 입장을 묻는 점에서 스포츠에서의 정치적 이슈가 선수 개개인으로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상징적이다.

이는 스포츠 스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에서부터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다면 어디까지 개입하거나 발언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등 여러 시사점을 준다. 호날두 같은 슈퍼스타가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되면 그 파장이 상당할 것이다. 그가 발언하게 되면 좋든 싫든 스포츠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뚜렷한 흔적을 남길 것만은 분명하다.

●답변의 어려움과 침묵
하지만 그동안 자기중심적이었던 호날두의 행적에 비추어 보면 그가 이러한 공적인 부분에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목소리를 낼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호날두는 자신과 팬, 주변 동료들과 많은 불화를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침묵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앰네스티의 요청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 발언하면 호날두를 극진히 모셔간 사우디아라비아와 불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옹호하면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시각을 지닌 이들의 실망을 살 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싼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은 다른 사회의 시각과 다를 수 있다. 발언 내용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안팎 어느 쪽에서든 비판받기 쉬운 상황이다.

최근 미국 CNN은 이 문제와 관련해 호날두의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답변을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침묵은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회피나 묵인으로 비쳐 후일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관계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는 호날두. 리야드=AP 뉴시스


●시험대에 오른 답변과 평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뛰었지만 조국 포르투갈을 우승시키는데 실패했던 호날두는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36)가 조국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호날두는 최고 선수 논쟁에서 메시에게 패했다. 그런 그가 축구의 중심 무대였던 유럽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적하며 말년까지 천문학적인 돈은 벌게 됐다.

하지만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한 시선이 교차하고 있는 곳에서 본인의 자발적 의지와는 관계없이 민감한 정치적 이슈와 스포츠 스타의 정치적 중립성 여부에 대한 시대적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답하기 민감한 질문 앞에 섰다. 답변 여부와 내용에 따라 그에 대한 평판은 또 한번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돈은 벌게 됐지만 개인적인 평판은 또 다시 시험대에 서게 됐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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