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이었던 장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8〉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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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장어는 한국에서 먹으면 잡혀갑니다. 천연기념물이거든요. 제주도 천지연 폭포 일대에서 서식하는 희귀한 물고기지만 베트남에서는 흔한 장어니까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장어구이를 앞에 두고 일행에게 내가 설명한 말이다. 과거에는 옳았으나 지금은 틀린 표현이다. 천지연 폭포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를 잡으면 안 되지만 먹을 수는 있다. 1962년에 무태장어 서식지인 천지연 폭포 일원이 천연기념물(제27호)로 지정됐고, 1978년에는 분포 지역과 관계없이 종 자체가 천연기념물(제258호)이 됐다. 이후 해외에서 양식용, 식용 등으로 반입됨에 따라 천연기념물로서 실효성이 없어져 2009년에 해제됐다. 천지연 폭포는 무태장어의 주 서식지로 생태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잡으면 형사처벌 될 수 있다.

무태장어는 뱀장어과로 학명은 앙귈라 마르모라타(Anguilla marmorata)다. 열대성 물고기로 아프리카 동부, 남태평양, 중국 등 널리 분포한다. 제주도와 일본 나가사키는 서식 가능한 북방 한계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남 탐진강, 경북 오십천, 경남 거제 구천계곡, 하동 쌍계사 계곡에서도 서식한다. 지난해 8월,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무태장어가 발견되기도 했다. 몸에 작은 반점이 있어 민물장어 혹은 풍천장어로 불리는 토종 뱀장어인 앙귈라 자포니카(Anguilla japonica)와 쉽게 구별된다.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제주뱀장어 혹은 무늬가 있어 얼룩뱀장어, 점박이뱀장어 등으로 불린다. 몸길이는 2m 넘게까지 자라고, 몸무게는 20kg을 웃도는 대형 어종이다. ‘이보다 큰 장어가 없다’는 뜻의 ‘무태(無泰)’에서 유래했다. 작은 물고기, 갑각류, 패류, 개구리까지 잡아먹는 탐식성 어종이다. 먼바다에서 부화한 새끼가 해류를 타고 와서 하천을 거슬러 올라 5∼8년간 살다가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산란 장소는 필리핀 남부, 인도네시아 동부, 파푸아뉴기니, 마다가스카르의 깊은 바다일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다.

무태장어는 뱀장어와 유사한 쫄깃한 식감이며 껍질이 두껍고 탱글탱글하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붕장어나 갯장어의 부드러운 식감과는 다르다. 요즘은 베트남에서 치어를 들여와서 1년 정도 키워서 시중에 판매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에 무태장어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느는 추세다. 현재 한국에 서식하는 민물장어는 앙귈라 자포니카(뱀장어)와 앙귈라 마르모라타(무태장어) 두 종이 있다. 이 외에 동남아에 많이 서식하는 앙귈라 비콜라종 등이 식용으로 수입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예전부터 먹었던 자포니카의 맛과 식감을 좋아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요즘은 외래종 장어와 구별하기 위해 차림표에 자포니카를 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민물장어는 주로 마르모라타와 비콜라다. 맛은 상대적이므로 가격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을뿐더러 말해주지 않으면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무태장어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 천연기념물이었으나 지금은 손쉽게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서식지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태장어의 지속적인 서식을 위해서 바다와 접한 기수역에서 서식지까지 치어 이동 경로가 오염되거나 보 등의 건설로 막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장어#천연기념물#무태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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