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언젠가 우주에 갈 때 가지고 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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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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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부착된 이른바 ‘보이저 골든 레코드’의 모습. 혹시나 조우할지 모를 외계인을 위한 기록물이다. 
인류 문명을 설명할 갖가지 사진, 소리, 문자를 담았는데 음악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베토벤 현악사중주, 피그미족의 
성년식 노래 등을 수록했다. 동아일보DB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부착된 이른바 ‘보이저 골든 레코드’의 모습. 혹시나 조우할지 모를 외계인을 위한 기록물이다. 인류 문명을 설명할 갖가지 사진, 소리, 문자를 담았는데 음악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베토벤 현악사중주, 피그미족의 성년식 노래 등을 수록했다.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임희윤 기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보여준 손에 잡힐 듯한 천체 풍경,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 발사, 50년 만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인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어린 시절부터 손꼽아 기다린 우주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지구 같은 천체를 발견해 거기 사는 외계인과 소통이나 문화 교류 따위를 해야 할 때 지구인 대표 음악가를 딱 하나 정해 파견해야 한다면? 중차대한 미션을 짊어질 주인공으로 우린 누굴 뽑아야 할 것인가.

#1. 가장 유력한 첫 번째 후보는 단연 비틀스다. ‘Yesterday’ ‘Let It Be’…. 숱한 명곡으로 인류를 울린 이른바 우주 대스타.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우주 공간에 노래를 날려본 전력까지 있다. 1967년 사상 최초로 우주 위성을 동원한 지구촌 생중계 이벤트였던 ‘우리의 세계(Our World)’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 음성 파일을 431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향해 쐈다. 이 노래는 아직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중이다. 가는 길에 어쩌면 알파 센타우리 어딘가에 닿아 이미 유행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우리도 모르는 새 북한의 인기가요가 돼 있듯…. 문제는 나이다. 생존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올해 80세, 링고 스타가 82세다. 탐사 일정을 재촉하고 싶을 뿐이다.

#2. 만시지탄. 두 번째 유력 후보는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했다. 영국의 신비로운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1947∼2016). 로켓 발사와 우주 미아 이야기를 다룬 ‘Space Oddity’를 필두로 영화 ‘마션’(2015년)에도 들어간 ‘Starman’, 난해한 가사의 명곡 ‘Life on Mars?’, 죽음을 예견한 신비로운 유작 ‘★(Blackstar)’까지…. 생전 가장 외계인 같은 팝스타로 꼽힌 그는 어쩐지 100광년 바깥의 외계인과도 친구처럼 바로 대화를 나눌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지금 지구상에 없다. 음악 마니아들이 화성 탐사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보위는 어쩐지 죽지 않고 오늘도 화성 크레이터 그늘에 몸을 기대고 지구를 내려다보며 기타를 퉁기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3. 세 번째 유력 후보는 다행히 아직 살아 있다. 올해 75세. 영국의 전설적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다. 천체물리학자 출신. 퀸 시절부터 끊임없이 독특하고 우주적인 곡을 써왔다. 2019년 미국 탐사선 뉴허라이즌스호가 태양계 밖 소행성 울티마 툴레를 지날 때는 축하곡인 ‘New Horizons(Ultima Thule Mix)’도 헌정했다.

#4. 간과한 사실이 있다. 외계인은 우리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의 평균율 음계에 기반한 비틀스, 보위, 퀸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어쩌면 그들에겐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지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미지와의 조우’(1977년)를 보라. 난해한 프리 재즈를 사랑하는, 외계인의 괴팍한 음악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린 가장 뜻밖의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머리를 쥐어뜯을 미래 인류를 위해 미친 척하고 한국 헤비메탈 밴드 ‘로스 오브 인펙션’을 추천한다. 우주 공간에서 만난 미지의 공포가 세계에 전이되는 기괴한 과정을 앰비언트, 성악, 신시사이저, 극단적 저음의 8현 기타 연주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독특한 팀. 영화로 치면 존 카펜터의 ‘괴물’(1982년), 폴 앤더슨의 ‘이벤트 호라이즌’(1997년) 같은 스페이스 호러물인 셈이다. 이 과격한 음악에 대한 외계인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이리라. 바흐의 선율보다 아름답게 느끼든,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든….

#5. 결국 낯선 이와 소통할 때 중요한 것은 선의와 메시지다. 다시 1967년 비틀스로 돌아간다. 당시 비틀스 멤버들은 지구촌 생중계 테마곡 작곡을 의뢰받고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이 시점에서 인류 모두에게 전파할 가장 간절한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렇게 만들어져 위성 전파로 처음 공개된 신곡이 ‘All You Need is Love’였다. 55년이 흐른 지금도, 어쩌면 550년이 지난 미래에도 답은 같을지 모르겠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인에게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전쟁이 아닌, 서로를 향한 사랑 아닐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우주#노래#보이저 골든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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