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윤완준]‘선서’냐 ‘선시’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입력 2022-08-15 03:00업데이트 2022-08-15 12:26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3불1한’ 사드정상화 중단 압박이 본질
“새 관리·옛 장부” 中협박 심상치 않다
윤완준 국제부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서울에 평양냉면집이 많다”며 한국이 북한에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치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게 평양냉면집과 무슨 상관이냐”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이 “타이베이에 산둥만두집 38곳, 산시국수집 67곳이 있다. 미각은 속일 수 없다. 대만은 항상 중국의 일부였다. 오래전 잃어버린 아이는 결국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7일 트위터에 올렸다. 트위터엔 비판 댓글이 잇따랐다.

중국에선 화춘잉의 발언에 열광했다. 소셜미디어 웨이보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대만이 중국의 일부이니 통일하겠다는 입장을 여기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만두집 국수집 주장은 누리꾼들이나 할 얘기다. 그런 주장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짜장면 먹으러 한국에 가겠다”고 한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도 곱게 들리지 않게 만든다.

이게 중국공산당의 방식이다. 외교부 대변인도 공산당 선전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화춘잉은 2019년 중국 공산당 간부 교육 기관인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에 글을 썼다. “결연한 신념으로 중국공산당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해야 한다.” 독설이 섞인 중국 정부의 입장엔 때로 사실과 주장이 섞여 구분하기 힘들 때가 적지 않다.

중국은 사드 문제로 한국을 압박하는 선전전을 시작했다. 독설로 유명한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이른바 ‘사드 3불’과 관련해 “새 관리가 과거의 장부를 외면할 수 없다(新官不能不理舊帳)”고 주장했다.

이 말은 중국에서 주로 투자를 유치해놓고 기업들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국 지방정부들을 비판할 때 써온 말이다. 지방정부에 쓰던 용어로 한국에 경고한 셈이다.

자오리젠에 이어 외교부 다른 대변인인 왕원빈이 “한국이 대외에 ‘3불1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고 해 한국을 들쑤셨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 다음 날이었다. ‘1한’은 현재 배치된 사드 운용까지 제한한다는 것이다. 2017년 말 한중 간 사드 봉합 이후로 한 번도 공식적으로 꺼내지 않은 표현이다. 사드 운용 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윤석열 정부에 경고장을 날렸다. 지금은 논쟁 수준이지만 운용 정상화가 가시화될수록 갈등은 실재화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사드 운용은 주권이다. 중국과 협의할 일이 아니다”라는 원칙만 강조하면 된다. 내정간섭 수준 주장에 ‘그나마 선의를 보였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가 왕원빈이 애초 “한국이 3불1한을 선서(宣誓)했다”고 말했다가 “선시(宣示)했다”로 바꿨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선시는 ‘널리 알린다’는 뜻이니 중국이 기존에 제기한 사드 3불이 약속이라는 주장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가 양국 관계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한중 공동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왕원빈은 처음부터 ‘선시’로 했다. 중국 정부도 그렇게 얘기한다. 중국 정부는 쉽게, 특히 하루도 안 돼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선시’ 그 자체도 ‘선언하다’, ‘발표하다’ 의미다. 약속이 아니라 선언이라 했다고 중국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뜻인가.

본질은 중국이 ‘3불1한’으로 사드 운용 정상화까지 본격 견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본질이 아닌 것으로 선의를 찾으려 하지 말라. 오히려 주로 지방정부에 쓰던 말로 한국을 협박한 자오리젠의 논리가 왕원빈을 통해 3불뿐 아니라 1한으로 확장될지 정부는 주목해보라.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