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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장택동]압수수색당한 트럼프

입력 2022-08-11 03:00업데이트 2022-08-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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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도리안’이 미국에 접근하던 2019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주 등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반면 앨라배마주 기상당국이 ‘우리는 피해 예상 지역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는 도리안의 예상 경로에 앨라배마주가 포함된 미 국립해양대기청의 지도를 언론에 공개했다. 알고 보니 앨라배마주 부분은 트럼프가 펜으로 그려 넣은 것이었다. 언론에선 ‘샤피(트럼프가 즐겨 쓰던 펜 브랜드) 게이트’라고 조롱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퇴임 뒤 남긴 자료에는 이 지도가 없었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메모나 문서를 종종 찢어버리곤 했다. 이 중 일부는 참모들이 테이프로 다시 붙여서 보관했지만, 트럼프가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린 문서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트럼프가 집무실에 있는 각종 자료들을 골판지 상자에 넣어서 가지고 나간 경우도 많았다. 이렇다 보니 허리케인 관련 지도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주고받은 편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낸 서한 등이 트럼프 퇴임 후에 행방이 묘연하다.

▷미 대통령기록물법에는 대통령 공무와 관련된 문서, 사진, 지도, 음성 등은 퇴임 후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어기면 최고 징역 3년의 처벌을 받는다. 트럼프 측은 올해 1월 일부 자료를 정부에 반환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기밀로 분류된 국가안보 관련 문서들이 포함돼 있었다. 또 민감한 자료들을 모두 반환하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미 연방수사국(FBI)은 8일 트럼프의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사법 절차에 착수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 45명 가운데 지금까지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워터게이트’의 주역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기소 직전에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록물 반출 외에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을 선동한 혐의, 대선 결과를 뒤집도록 조지아주 법무장관 등에게 압력을 가한 혐의 등으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조만간 ‘전직 대통령 기소 1호’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 공화당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수사가 지지층을 오히려 결집시켜 11월 중간선거와 2024년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 헌법에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트럼프의 대선 도전을 막기 어렵다. 트럼프도 “마녀사냥”이라고 정부를 비판하며 출마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가 법치를 무시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를 해왔다는 것을 미국 유권자들은 기억한다. 이제 와서 ‘탄압받는 피해자’라는 이미지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무거운 업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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