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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희생자 너무 많다… 평화협상 고려해야” 키이우서 고개 드는 휴전론[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2022-06-16 03:00업데이트 2022-06-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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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상징 ‘성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광장에서 한 시민이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버린 탱크와 장갑차를 촬영하며 ‘끝까지 싸우자’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왼쪽 사진). 다른 시민은 수도원 벽면에 붙은 우크라이나인 희생자 사진들 앞에서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며 기도하고 있다. 키이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12일(현지 시간)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독립광장. 친(親)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축출한 ‘유로마이단 혁명’(2014년)을 비롯해 주요 시위 현장이자 정치의 상징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날 시민들은 광장 잔디밭에 종이로 된 우크라이나 국기를 꽂았다. 국기에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중학생 소피아 양(14)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희생자가 너무도 많아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론 속 종전론 대두

우크라이나 전쟁이 16일로 113일째다. 동부 돈바스를 중심으로 국지전이 길어지고 있다. 교전도 치열해졌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12일 “하루 평균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100여 명, 부상자 약 500명이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사망자도 3만 명에 육박한다.

키이우와 ‘집단학살’ 현장인 부차, 이르핀에서 기자가 9∼12일 만난 시민들 사이에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강경론과 “평화협상도 생각해야 한다”는 종전론이 공존했다. 키이우의 상징 ‘성(聖)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한쪽 벽면에는 러시아군에 희생된 우크라이나인들을 추모하는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반면 수도원 앞 광장에는 키이우 함락에 실패한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버린 탱크 장갑차 등이 전시됐다. 국민 사기와 항전 의지를 높이도록 정부가 기획한 전시였다.

대학생 한나 씨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다. 평화협상이 재개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원 발리에라 씨는 “러시아와 끝까지 싸워 영토를 수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돈바스 전투 상황과 전쟁이 언제 끝날지 서로 이야기했다. 키이우 외교 관계자도 “각국 외교관 사이에서는 ‘이번 전쟁이 3년가량 지속될 것’이란 예측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시간은 푸틴 편?

키이우 대통령 관저 마린스키궁 앞에서 만난 안톤 씨는 “러시아군의 수도 침공도 잘 막아냈고 ‘계속 항전해야 한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00% 지지한다”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가 유리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푸틴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첫 번째 침공 목표는 키이우를 속전속결 함락시켜 젤렌스키 정권을 축출하고 친러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키이우 함락이 실패하자 4월 초 수도권과 북부 병력을 철수시켜 돈바스와 남부 마리우폴 등에 집중시켰다.

러시아군은 15일 현재 돈바스 루한스크주 거점 도시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의 80% 이상을 장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국방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러시아가 일주일 내에 세베로도네츠크, 리시찬스크 그리고 몇 주 안에 돈바스 전체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은 에너지 및 곡물 가격 폭등과 공급망 교란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으로 각국 경제 위축이 가속화하면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나 카자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같은 유럽 동·중부 국가 정상들은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끝까지 몰아내야 한다”며 평화협상 재개마저 반대한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 정상들은 전쟁이 장기화해 자국 경제에 미칠 피해를 더 걱정한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전쟁 피로감, 에너지·곡물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에 빨간불이 커지면서 서방 정상들이 (전쟁 지속에) 부담을 느낀다”며 “강한 제재로 러시아 경제에 피해를 입혀 푸틴을 변화시키려는 전략도 성과가 불확실해졌다”고 분석했다.

EU는 지난달 30일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에 이어 천연가스 수입 제한 계획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일부 회원국의 반발로 사실상 접었다. 각종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지표상 안정을 되찾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1달러당 140루블대로 치솟았던 자국 통화가치도 13일 57루블까지 내려갔다. 러시아 주식지수 RTS도 침공 후 610 선까지 폭락했지만 2배 이상으로 올라 이날 1268.83을 기록했다.

젤렌스키 지지 기류 바뀔 수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완전 철수’를 요구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동영상 연설에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로서 “영토를 포기한다”고 선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실현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군사 전문가들과 유럽 관료들은 크림반도 회복은커녕 러시아의 돈바스 장악을 막아내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능력을 넘어선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가 모든 영토를 수복하려 한다면 서방이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외교 관계자들은 전쟁 장기화로 키이우 여론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지난달 9일 우크라이나 국제공화문제연구소(IRI) 설문조사에서 94%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올 1월 지지율이 23%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지지율이다. 하지만 ‘영토 완전 수복’ 같은 현실성 희박한 목표를 계속 내세운다면 후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기류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교전에서 승리해도 영토 수복은 쉽지 않다. 유럽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 이언 본드 외교정책국장은 영국 BBC에 “서방은 ‘돈바스에서 승리해도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같은 친러 분리주의 반군 장악 지역이나 크림반도 탈환 시도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승리 조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서방이 최소 탱크 500대, 장갑차 2000대, 다연장로켓시스템(MLRS) 300대, 곡사포 1000대 등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추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유럽 7개국 정상회의, 나토를 비롯한 세계 50개국이 참가하는 우크라이나 국방자문그룹(UDCG) 회의가 추가 무기 지원을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수준을 맞추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우크라이나가 현실적인 ‘승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휴전 후 국가부강 방안이 대표적이다. 러시아군이 돈바스 전 지역을 장악하면 장기간 휴전을 추진한 뒤 서방의 대규모 재건 지원을 받아 사회 정상화에 매진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입은 경제적 피해는 약 5000억 달러(약 646조 원), 파괴된 기반 시설 복구 비용만 약 1000억 달러(약 130조 원)로 추산된다. 휴전 이후 재건에 나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을 두루 발전시켜 유럽연합(EU) 가입을 가시화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란 주장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싸움을 지속하면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며 “진정한 승리는 전장에서가 아니라 이번 전쟁으로 생성된 국민 단합 및 국가 에너지를 활용해 더 강하고 번영한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이우에서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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