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반도체 전쟁, 기업인 ‘모래주머니’ 떼고 뛰게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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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기업, 투자와 인재 경쟁
정부 홀로 밤새운다고 이길 순 없다

박용 부국장
박용 부국장
요즘 세계 경제에서 가장 핫한 나라가 대만이다.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 최근 페이스북에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며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했다”고 자랑했지만 대만의 압도적 성장세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대만은 2020년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0.9%)’했을 때도 3%대 성장을 했다. 지난해엔 2008년 마잉주 전 총통 때부터 꿈꾸던 6%대 성장을 달성하며 한국(4.0%)과 격차를 벌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년 만에 한국을 앞지른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대기업과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중심으로 재편하고 ‘회귀전략’을 통해 해외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차이잉원 매직’이 미중 무역갈등과 코로나19 위기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포럼에서 “반도체의 경우 모든 걸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맹들과 협력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가치를 공유하는 우방 국가들이 생산을 분담)을 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와 국가 안보를 떼어내기 어려운 경제안보 시대에 맞게 우방끼리 공급망 ‘깐부 동맹’을 구축해 경제적 안보적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이 자칫 실기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인 ‘프렌드쇼어링’ 과정에서 대만과의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

대만은 벌써 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3각 동맹을 가동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만의 TSMC는 이미 각각 120억 달러와 7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TSMC와 소니가 일본에 짓는 반도체 공장 투자금의 절반은 일본 정부가 댄다.

지난해 미 백악관이 내놓은 공급망 전략보고서엔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이 50번 넘게 언급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열 때마다 삼성전자를 초대하고 있다. 미 정부가 삼성전자에 반도체 재고 등 공급망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도 반도체 프렌드쇼어링을 위한 신뢰 구축 단계라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 정가에 정통한 산업계 한 고위 인사는 “삼성이 앞으로도 계속 초대받을 것이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깐부 동맹이 반도체 공급망의 새판을 짜고 있고 미국의 초대장은 수시로 날아오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가석방된 뒤 취업 제한에 묶여 과감한 투자나 인수합병(M&A) 결정조차 쉽지 않다는 게 경제계의 걱정이다. 오죽하면 경제5단체가 뜻을 모아 문재인 정부에 이 부회장 등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복권 청원서까지 내고, 기업인들이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뛸 수 있게 발목을 잡고 있는 ‘모래주머니’부터 떼어 달라고 하소연하겠는가.

기업의 낙수효과가 예전만 못 해도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글로벌 기업 없이 잘나가는 나라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한민국의 현재는 역대 모든 정부의 노력이 쌓인 결과이며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함께 이룬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와 국민, 기업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뛸 수 있다면 경제계가 요청하는 사면 조치로 기업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래주머니’부터 떼어주는 노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반도체 전쟁#대만#모래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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