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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송평인]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입력 2022-03-21 03:00업데이트 2022-03-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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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은 알랭 들롱을 ‘아랑 드롱’이라고 불렀다. 그레고리 펙이니 리처드 버턴이니 하는 미국 할리우드 미남 배우들의 이름은 몰라도 이 프랑스 배우의 이름은 알았다. 지금 6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를 개봉 영화관이 아니라 TV 영화를 통해 봤을 뿐인데도 그렇다. 한국인에게 미남 배우의 대명사는 알랭 들롱이다.

▷들롱의 첫 히트작은 주제음악으로도 유명한 ‘태양은 가득히’(1960년)다. 자신이 한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는 병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영화에서 들롱이 맡은 리플리 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들롱 하면 역시 ‘누아르(범죄)’ 영화에서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냉혹한 범죄자 연기다. 장폴 벨몽도와 같이 나온 ‘볼사리노’(1970년), 장 가뱅과 함께한 ‘암흑가의 두 사람’(1973년)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들롱은 젊었을 때 독일 미녀 배우인 로미 슈나이더,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객원 멤버인 니코와 염문을 뿌리고 70대에도 20대 여성 모델과 동거했지만 결혼은 1964∼69년 여배우 나탈리 들롱과 한 것이 유일하다.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앙토니다. 지난해 나탈리가 췌장암에 걸렸을 때 안락사를 시도했다. 그때 이 아들이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 아들은 19일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죽게 되면 안락사를 택할 텐데 그때 끝까지 곁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들롱은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이후 스위스에 살고 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의 이주는 프랑스의 많은 부자들처럼 ‘부유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긴 갔으나 안락사가 맘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들롱은 나탈리가 죽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누구나 어느 나이가 되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수술 자국 없이 조용히 사라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들롱의 나이 올해 87세다. 그는 2019년 뇌졸중을 겪었지만 아직 건강하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유명인의 안락사 결심이 하나둘 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6년 일본 인기 TV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가 한 월간지에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글을 게재해 우리나라에서까지 화제를 모았다. 안락사를 뜻하는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를 그리스 어원으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름답지 않은 죽음을 피하려는 욕구는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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