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야산 담배꽁초 투기, 실수 아니라 방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종엽 사회부 차장
조종엽 사회부 차장
백두대간 근방이 불타고 있다. 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원 삼척시까지 번지면서 여의도 면적의 60배가 넘는 산림을 집어삼켰다. 산림청과 소방당국이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8일까지 주요 불길을 잡지 못했다. 산불 장기화 우려까지 나온다. 강원 강릉·동해와 영월 지역에서도 최근 잇달아 산불이 발생했다.

피해는 ‘막심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수천 명이 불길을 피해 집을 떠났고 수백 채의 주택과 비닐하우스, 축사, 공장, 창고가 불탔다. 수령이 200년 넘는 소나무 8만여 그루가 자생하는 금강송 군락지도 피해를 입었다. 연일 비상근무를 하던 40대 소방관은 안타깝게 6일 오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당국은 울진·삼척 산불이 담뱃불로 인한 ‘실화(失火)’일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최초 발화 직전 발화지점을 지나간 차량 4대를 파악했다. 차량 탑승자가 불이 채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창문 밖으로 던져 산불이 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화재 원인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특별재난지역’ 선포까지 부른 역대급 산불의 원인이 고작 담배꽁초 하나일 수 있다는 추정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정부는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의 76%가 실화·소각 등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부주의에는 입산자 실화(34%), 논·밭두렁 소각(15%), 쓰레기 소각(14%), 담뱃불 실화(5%)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피우던 담배꽁초를 야산에 버리는 걸 실수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버리는 사람이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모를까.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는 불이 안 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

달리는 차량에서 버리는 행동은 더 악질이다. 불이 꺼졌는지, 혹시 마른 낙엽 등에 옮겨붙는 건 아닌지 지켜보지도 않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는 ‘산불로 이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봐야 한다. 과실이라기보다 고의에 가깝다. 더구나 차량 대부분에는 재떨이가 있다. 차에서 냄새가 나는 건 싫고 재떨이를 비우기는 귀찮지만 산불이 나는 것은 상관없다는 것인가.

산불은 점차 대형화되는 추세다. 2000년 4월에도 삼척 등에서 일어난 동해안 산불이 축구장 3만3000여 개 넓이와 맞먹는 2만3800ha를 태웠다. 대형화된 산불은 조림사업이 성공해 산에 수목이 빽빽이 들어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지난해 세계 각지에서 초대형 산불이 잇따른 것처럼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산불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재난 환경이 바뀌면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산불로 이어지는 야산의 담배꽁초 투기 행위를 더 이상 과실로 치부할 계제가 아니다. 음주운전도 과거에는 ‘어쩌다 한 번은 봐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살인미수와 비슷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담뱃불 실화’라는 말부터 바꾸자. 담뱃불에 의한 ‘방화’다. 이제 막 연간 산불의 60%가 발생하는 봄에 들어섰다.

조종엽 사회부 차장 jjj@donga.com


#경북 산불#강원 산불#야산 담배꽁초 투기#방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