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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천광암 칼럼]이재명의 카멜레온 포퓰리즘

입력 2021-12-06 03:00업데이트 2021-12-0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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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등 연이은 말 바꾸기
실용주의 아닌 기회주의에 가까워
‘국민이 반대하면’ 전제 달지 말고
‘한다’ ‘안 한다’ 분명히 밝혀야
천광암 논설실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올해 8월 친여 성향의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포퓰리즘으로 비난받은 정책들을 많이 성공시켜 인정받았다”면서 “앞으로도 그냥 포퓰리즘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2018년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는 “나는 포퓰리스트다. 국민을 대리하는 게 정치고, 이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굳이 ‘민주주의’를 두고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이 후보다. 신념형 포퓰리스트라는 이야기다.

이랬던 이 후보가 최근 포퓰리즘 지적을 받아온 자신의 공약·정책을 뒤집는 듯한 발언을 연달아 쏟아냈다. 지난달 18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달 29일에는 국토보유세에 대해 “불신이 많고 오해가 많기 때문에 국민의 동의를 얻는 전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1일 “국민들이 끝까지 반대해 제 임기 안에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이 후보의 입장 전환을 ‘실용주의’로 포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도층 표를 끌어오기 위한 작전상 후퇴 또는 정치적 꼼수에 가깝다. 무엇보다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등을 ‘접을 수도 있다’라는 발언에 “국민이 반대하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국민의 뜻’을 앞세우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국민’을 앞세울 때는 각별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미국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얀베르너 뮐러 교수는 전 세계 포퓰리즘의 공통된 특징을 ‘국민’에 대한 정의(定義)의 독점에서 찾는다.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신들만 정당한 국민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 ‘국민의 뜻’을 해석하는 데 객관적 증거 따위는 필요 없다. 오직 주관적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국민이 반대하면”이 어느 순간 아무 설명도 없이 “국민이 원해서”로 바뀔지 모른다.

뮐러 교수에 따르면 포퓰리스트는 자기편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국민은 아예 국민의 정당한 일부가 아니라고 치부한다. 이 후보를 “기본소득 포퓰리스트” “대장동 불로소득 게이트의 당사자”라고 비판해온 이상이 제주대 교수에 대해 민주당이 최근 8개월 당원 자격정지 결정을 내린 것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지난달 30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전쟁 범죄 등의 진실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자신들이 독점하는 역사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국민’이 아닌 ‘범죄자’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의 변신이 실용주의로의 전환이 아닌, 카멜레온 포퓰리스트의 위장색 바꾸기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간판공약인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수시로 바뀌어 온 이 후보의 발언이다. 이 후보는 올해 여름 여당 경선 국면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의 집중공격이 쏟아지자 7월 초 기자회견을 갖고 “기본소득은 제1공약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그간 이 후보가 기본소득에 쏟아온 공과 노력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의 공약 철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부 지지층의 표심이 흔들리자 이 후보의 입장은 다시 바뀌었다. 7월 하순 기자회견을 갖고 2023년 1인당 25만 원으로 시작해 임기 내 최소 100만 원 이상으로 늘린다는 세부 내역까지 공개하며 시행에 못을 박았다. 그랬다가 다시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1일 나온 것이다. 한데 이마저도 오락가락의 끝이 아니었다. 3일에는 삼성경제연구소를 방문해 “삼성에서 기본소득 얘기도 좀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뜬금없는 제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 후보가 최근 포퓰리즘 공약·정책에 대해 후퇴하는 듯한 발언을 하게 된 데는 국민들의 확고한 반대여론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제는 기본소득과 같은 ‘무차별 현금 뿌리기 포퓰리즘’과 국토보유세 같은 ‘90 대 10 갈라치기 포퓰리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소양과 수준이 높아졌다. 포퓰리즘의 종착지는 재정 파탄과 민주주의 파괴라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민이 반대한다면”과 같은 모호한 전제를 달아, ‘한다’ ‘안 한다’에 반 발씩 걸치는 양다리 전략의 유통기한은 진즉에 지났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의 작은 성취를 잊지 못하고, 위장색을 바꿔 가면서 포퓰리즘의 길을 계속 걸을 생각이라면 스스로 낭떠러지를 찾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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