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의 코[이은화의 미술시간]〈184〉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1-10-14 03:00수정 2021-10-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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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코’, 1947∼1949년.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발표한 동화 속 주인공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이 나무 인형 때문에 긴 코는 거짓말의 상징이 되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40년대 중반부터 긴 코를 가진 인물 조각들을 제작했다. 지독한 거짓말쟁이를 표현한 걸까. 동화 속 피노키오보다 훨씬 긴 코를 가졌다.

스위스 태생의 자코메티가 조각가를 꿈꾸며 파리로 향한 건 스무 살 때였다. 고전 조각을 배운 뒤 입체파 양식을 거쳐 193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에 몰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의 작품과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인체 조각으로 회귀했다. 전후 자코메티는 인체를 가늘고 길게 늘어뜨린 고독한 인물상을 선보이며 실존주의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긴 코를 가진 두상 조각도 이 시기에 제작됐다.

울퉁불퉁한 질감의 청동 두상은 밧줄에 묶인 채 네모난 철제 틀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눈은 흐리게 묘사됐고 귀는 아예 없으며 입은 크게 벌렸다. 보지도 듣지도 않고 거짓말만 계속했던 건지, 코가 길어져 틀 밖으로 쭉 뻗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긴 총구를 가진 총을 연상시킨다. 크게 벌린 입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밧줄에 매달린 두상은 교수대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거짓말해야 하는 운명처럼 보인다.

혐오와 갈등, 파괴로 점철된 전쟁의 시대를 겪은 자코메티에게 세상은 어땠을까. 거짓과 위선, 불안으로 가득해 보였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피노키오에게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제페토 할아버지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은 서로가 속고 속이는 또 다른 전쟁터가 아니었을까. 거짓말은 반드시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 작가는 거짓말이 남을 죽이는 무기도 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고 만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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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코#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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