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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유동성 파티’ 끝내자는데 선거 앞둔 재정중독 여전

입력 2021-08-31 03:00업데이트 2021-08-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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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통화당국과 금융당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어진 ‘유동성 파티’의 흥을 깨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5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린 이후 15개월 만이다. 통상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먼저 금리를 조정하면 뒤따라가곤 했는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앞장섰다.

그만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 빚, 가중되는 인플레이션 압력 등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2분기(4∼6월) 1387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4년 만에 30% 급증해 1805조 원을 넘어섰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집값 급등에 따라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KB국민은행 기준)는 2017년 5월 6억708만 원에서 이달 11억7734만 원으로 94% 뛰었다.

금융당국도 금융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며 가계 빚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일부 은행이 주택담보·전세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시중은행이 일제히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는 등 대출 중단 도미노가 확산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가계부채 관리에 가능한 모든 정책역량을 동원하겠다”며 더 강한 규제를 예고했다.

과잉 유동성이 낳은 자산시장 거품 등 부작용은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집값 급등과 이에 따른 빚 급증은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 탓이 큰데 이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을 억제하는 건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소상공인들과 중소기업계가 “취약계층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대출 한도 축소 조치를 철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한은과 금융당국은 돈줄 조이기로 합을 맞추고 있는데 재정을 책임진 정부는 여전히 돈 풀기를 고수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금리 인상으로 어려움이 커질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건 재정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렇다고 재정 형편은 무시한 채 나랏빚을 끌어다가 소비 여력이 충분한 이들에게까지 무차별 현금 살포에 나서는 건 무책임하다.

정부는 당장 추석 전에 국민 88%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11조 원을 푼다. 내년엔 604조 원 넘는 초슈퍼 예산도 편성한다. 여기엔 청년층을 위한 월세 및 교통비 지원부터 반값 등록금 확대, 장병들의 사회 복귀 준비금까지 20조 원 규모의 현금 지원성 사업이 담겼다. 정부가 2030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현금 살포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돈 풀기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과잉 유동성을 줄여야 할 때 정부의 무차별 돈 풀기가 계속되면 자산 거품과 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금융당국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표심을 겨냥한 ‘재정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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