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태어나선 안 될 나라’ 그래도 권력은 잡고 싶은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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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려먹는 ‘대한민국 否定’
욕하면서 혜택은 누릴 대로 누려
편 가르기 놀아나면 ‘약장사’ 계속
1948년 오늘은 제헌헌법 의결한 날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벌써 햇수로 20년. 대통령이란 사람이 자신을 뽑아준 이 나라의 정통성을 부정(否定)한 뒤 ‘대한민국 부정’은 좌파들이 배턴을 이어받는 스포츠가 됐다. 최근 여권의 지지율 1위 대선주자도 ‘미(美) 점령군과 친일세력의 합작’ 운운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려먹어도 너무 우려먹는다. 취임 일성부터 “반칙과 특권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반칙과 특권의 역사’로 규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 국가를 대표하는 분이 둑을 허문 뒤 대한민국 부정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역시 최고봉은 문재인 대통령. ‘친일파와 보수가 득세해온 이 땅의 주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기 내내 집요한 ‘세상 바꾸기’를 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재명 경기지사 차례인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정통성을 인정하는 북한도 아닌 이 나라에 악착같이 붙어산다. 그러면서 변호사도 되고 교수도 되고 장관·공공기관장, 심지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아파트 살고 자식은 해외 유학, 그것도 자기들이 증오한다는 미국으로 보낸다. 이 나라를 욕하면서도 혜택은 누릴 대로 누린다.

원조 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그가 ‘반칙과 특권 종식’을 부르짖는 사이 가족과 친인척, 측근이 거액을 수수하는 반칙과 특권을 누렸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가족이 받은 수십억 원의 금품은 환수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주류세력 교체’를 외치며 무서운 적폐청산을 밀고 나가는 동안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은 감히 손대기 어려운 신(新)특권계급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은 대체로 이렇다. 친일세력→반공·산업화세력→보수세력이 화장만 바꿔가며 한국 사회를 계속 지배해 왔다는 것. 이런 나라보다 확실하게 친일 청산을 이룬 북한 정권에 한반도의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운동권 시각이 그 연원(淵源)이다.

귀를 틀어막은 사람들에게 논박하자면 입만 아프다. 다만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내각이 대통령을 비롯해 항일투사 일변도였던 반면 김일성 정권 초기 지도부엔 일제의 헌병보조원 군(軍)출신 중추원참의 군수 검사 도의원 국장 등 친일파가 다수 포진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40년이 넘도록 무리하고 편협한 역사관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대학 이후 역사 공부를 안 했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둘 다일 것이다. 분명한 건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런 주장을 계속하는 데는 정치적 저의가 있다는 점. 민중의 분노를 확대재생산하려는 좌파 특유의 ‘편 가르기’ 전술이다. 그런 분노에 올라타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약을 파는’ 것이다.

이런 철 지난 선동에 놀아나는 국민이 있는 한 이들은 분노의 약 장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좌파 선동가들이 대한민국 부정을 들먹일 때 똑똑히 보아야 한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혜택을 누려 왔고, 누리고 있는지를.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무엇보다 오늘의 2030세대에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5060세대는 부모들이 일제강점기와 독립, 해방공간과 6·25전쟁을 거치며 간접적으로나마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 과정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2030들에게 대한민국 정통성 어쩌고는 더 이상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이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의 과거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공정경쟁, 사회안전망의 토대 위에 펼쳐질 자신들의 미래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구한말의 패망과 일제 강점의 질곡(桎梏)을 딛고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고 제헌헌법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73년, 한국은 유엔 기구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됐다.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다.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만들고, 명분 없이 벌인 전쟁도 미화하면서까지 국민적 자긍심을 키우려는 터. 엄연한 역사마저 왜곡해 자랑스러운 나라를 폄훼하는 자학 개그는 그만하라. 그것도 못 하겠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비하하면서, 그런 나라의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중적 행태라도 멈추라. 1948년 오늘은 제헌국회가 헌법 제정을 의결한 날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대한민국 부정#편협한 역사관#편 가르기 전술#약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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