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지 않는 원숭이[이은화의 미술시간]〈166〉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1-06-10 03:00수정 2021-06-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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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 ‘두 마리 원숭이’, 1562년경.
원숭이 두 마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 아치형 창가에 앉아 있다. 생김새로 보아 서아프리카 삼림에 서식하는 붉은 머리의 긴꼬리원숭이다. 가엾은 이들 뒤로는 벨기에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원숭이들은 대체 왜 여기에 묶여 있는 걸까?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해 화폭에 담고자 했다. 그의 그림들은 사실적인 묘사도 뛰어나지만 복잡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해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A4 용지보다 작은 이 그림은 브뤼헐이 남긴 40여 점의 유화 중 가장 작으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그림 속 원숭이들은 아마도 무자비한 무역상들에게 붙잡혀 북유럽까지 왔을 테다. 당시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하던 브뤼헐에게 이 아프리카 원숭이들은 기념할 가치가 충분한 경이로운 동물이었을 것이다.

왼쪽 원숭이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오른쪽 원숭이는 등을 돌린 채 바닥만 쳐다보고 있다. 주변에는 이미 먹어치운 빈 호두 껍데기가 나뒹굴고 있다. 아마도 이들은 낯선 유럽인들이 주는 달콤한 먹이에 홀려 포획됐을 가능성이 크다. 체념한 채 좁은 창틀 공간에 갇혀 있는 이국적인 동물들을 보며 화가는 무엇을 느꼈을까.

브뤼헐이 활동하던 시대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스페인 왕국의 지배하에서 주권을 빼앗긴 채 가혹한 폭정을 견뎌야 했다. 독립투쟁을 하거나 가톨릭에 맞서는 신교도들은 체포되거나 처형당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스페인 통치를 거부하진 않았을 터, 식민통치 체제에 순응하며 옹호하는 식민지 원주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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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에서 원숭이는 탐욕과 죄악,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브뤼헐은 쇠사슬에 묶인 원숭이를 통해 당장 먹을 것과 안락함을 위해 스스로 자유를 버린 어리석은 자들을 풍자하고 있다. 폭정에 저항하지 않고 탐욕만 남은 자들은 불쌍한 원숭이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원숭이#네덜란드#피터르 브뤼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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