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은성수만 잡는 비겁함

홍수용 산업2부장 입력 2021-04-30 03:00수정 2021-04-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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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인기 편승 무책임한 비판만 쇄도
대안 내놓고 책임질 정치인-관료 어딨나
홍수용 산업2부장
지난해 상반기,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한 청와대 회의에선 집값이 화두였다. 아파트값 잡기라는 한 목표로 달려가는 것 말고 다른 걸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시나리오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을 때 회의실 공기는 썰렁해졌다. “집값이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미분양이 많아지는 것도 또 하나의 위험요인이다. 은행과 금융시스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집값 급등으로 선거에 지장이 생길 판인데 분위기 파악 못 하고 황당한 소리 하네.’ 그날 장관들은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듯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1년 만에 은 위원장은 ‘황당한 소리’를 또 했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가상자산이며, 많이 투자한다고 다 보호할 수 없고,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를 무시한 꼰대 발언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청와대 게시판에는 사퇴하라는 청원이 올랐다.

가상화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 3년, 은 위원장은 딱히 한 일이 없다. 이번에는 ‘어른 행세’를 하며 세대 갈등에 불을 붙였다. 그가 굼뜨고 배려가 부족하다는 뜻일 수 있지만 장관 자리를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 정말 큰 실책은 가상화폐의 성격 규정과 투자자 보호라는 서로 다른 일을 인과관계로 엮인 걸로 설명한 점이다. 투자자 보호가 꼭 원금을 보장하라는 게 아니다. 그림 시장에 위조품이 많으면 사기범이 시장에 못 들어오게 막아달라는 것이다. 이런 기본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니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조차 의심받는 것이다.

더 꼴불견은 ‘꼰대 은성수’ 비판에 앞다퉈 숟가락을 얹는 정치인과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관료의 행태다. “21세기판 쇄국정책, 과세 시기를 2년 미뤄야 한다”, “무슨 자격으로 청년들에게 잘못이니 아니니 따지시나”, “가상자산을 다룰 가장 가까운 부처는 (우리 부처가 아니라) 금융위가 아닌가 싶다”…. 대안을 내놓고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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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관료는 비당파적으로 본래의 직무에 충실해야 하고, 명예로운 정치 지도자는 자기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데 있다고 했다(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1년 전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중에는 비당파적 관료가 드물었다. 지금 대안 없이 은성수 때리기에 몰두하는 사람 중에 명예로운 정치가를 나는 도무지 못 찾겠다.

1년 전과 최근 은 위원장의 황당 발언들은 급등한 자산이 언제까지나 오르기만 할 수 없다는, 거품 형성과 붕괴에 관한 것이다. 부동산과 코인 가격은 넘쳐나는 유동성 때문에 올랐다. 유동성 확대를 위해 늘린 빚이 임계점에 이르면 외국 투자자는 한국 국채를 던지려 할 수 있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이자율이 올라가고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원자재 수입비용은 오르고 물가가 오르는 도미노가 순식간에 일어난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다. 거품이 생길 때 사람들은 무엇을 사든 가치 있는 투자라고 포장한다. 그러다 한 방에 간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튤립을 거래한다고 생각했다. 피터 가버에 따르면 심각한 광풍이 불었던 기간은 버블 붕괴 직전 한 달 정도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내가 하는 건 투기가 아니고 투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뿐이다. 여기에 묻혀 거품이 커지는 소리가 안 들린다. 은성수의 ‘황당한 소리’들이 언젠가 통찰력 있는 예언으로 바뀌고, 시쳇말로 ‘성지’가 되는 건 아닐까.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은성수#비겁함#가상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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