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LH 전·현직 법인 만들어 투기’ 의혹, 비리사슬 낱낱이 밝히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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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광명·시흥지구 투기 의혹과 관련해 은퇴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과 현직들이 손을 잡고 법인을 세워 땅을 사들이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어제는 광명시 6명, 시흥시 8명의 공무원이 이 지역에 땅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식적인 직업윤리나 준법의식을 가진 사람은 생각도 하지 못할 투기행위가 무더기로 벌어졌다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LH 퇴직자들이 만들고, 현직이 출자한 법인이 개발대상 지역 토지를 사들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땅 소유주 명의가 법인으로 돼 있어 LH 직원 및 가족 이름을 토지대장과 대조하는 정부 조사로는 찾아내기도 어렵다. 상급자가 “평소 재테크를 잘해야 한다”고 부하 직원에게 조언하는 게 LH에선 흔한 일이라니 “직원은 투자하지 말란 법 있냐”는 불만이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LH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처음 적발된 13명처럼 현직끼리 돈을 모아 땅을 사는 게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 중 12명이 입사 30년 차 이상인 걸 보면 정년퇴직 이후를 대비해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는 땅에 투자했을 것으로 보인다. 투기를 주도한 직원이 m²당 묘목 수십 그루씩 심은 것도 LH와 협의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자신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개발 정보가 여러 차례 유출됐을 때 관계자들이 가벼운 징계를 받는 데 그친 것도 이들이 더 과감한 투기에 나선 원인일 수 있다.

LH 조직이 도덕불감증에 걸렸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년 LH 용역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낸 상위 20개 업체 중 11개는 대표가 LH 출신이거나 LH 출신 고위직이 있는 곳이다.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건축사사무실들이 LH 출신자 영입경쟁까지 벌인다고 한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전관예우가 공공연히 이뤄진다는 방증이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LH 사태에 대해 “공정과 신뢰를 바닥으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2·4대책’의 차질 없는 진행을 당부했다. 하지만 사업을 주도해야 할 LH의 도덕성이 뿌리부터 의심받는 상황에서 ‘공공주도 주택공급’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리 없다. 전·현직 LH 직원, 관련 공무원에 대한 강력한 수사로 ‘짬짜미 투기세력’을 남김없이 가려냄으로써 국민의 믿음을 되찾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lh#투기#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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