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文시대의 유물정치, 구시대의 국민의힘

박제균 논설주간 입력 2021-02-08 03:00수정 2021-02-0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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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구시대 유물 같은 정치” 野 비난… 다수독재·정치보복·편 가르기·日風
구시대 뺨치고 상식 파괴는 ‘보너스’
野도 비호감·기득권 이미지 못 벗어… 보수는 국민의힘 찍는다 착각 말라
보수 유권자도 국힘 집토끼 아니다
박제균 논설주간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민의힘의 대북 원전(原電) 의혹 제기를 비난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면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야당의 의혹 제기를 과거 보수 정권의 북풍(北風) 조작에 빗댄 것이다.

그로부터 4일 뒤, 여권은 헌정사상 처음 법관의 탄핵소추를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1심에서 무죄가 난 사건을 이유로, 퇴임이 확정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却下)’ 결정이 확실시되는 법관에게 기어이 ‘첫 탄핵소추 판사’라는 올무를 씌웠다. 탄핵의 실효성을 떠나 퇴직하는 판사일망정 편히 집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악착을 드러낸 것.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겠지만, 인간에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게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여 야당 총재를 제명하고 법안을 날치기했던 구시대 정치와 다른 게 뭔가. 그 구시대에도 대법원장도, 대법관도 아닌 일반 법관에 대한 탄핵 발의는 없었다. 그런 정권의 수장이 구시대의 유물 정치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 보복에서도 문 정권은 구시대보다 한발 더 나갔다. 집권하자마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저인망식 정적(政敵)·반대세력 숙청에 나섰다. 아직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구시대의 지역감정보다 무서운 ‘진영감정’을 조장해 온 나라가 이념 빈부 세대 노사 등으로 편을 갈라 박 터지게 싸우도록 만든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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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에 북풍이 있었다면 ‘문(文)시대’엔 일풍(日風)이 있다. ‘친일파’ ‘토착왜구’ 프레임을 씌워 비판세력을 옥죄다가 좀 잠잠해지는 줄 알았더니, 선거 때가 되자 야당의 한일 해저터널 공약에 다시 꺼내 휘두른다. 도대체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킨’ 사람들이 누군가. 이 정권은 ‘진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래도 구시대엔 경제라도 좋았다. 법관 탄핵소추를 통과시킨 날, 25번째 부동산정책을 들이밀 정도로 문 정부는 각종 경제정책을 헛발질하고 곳간을 거덜 내고 있다. 정권 핵심부의 위선과 내로남불, 유체이탈 화법으로 상식과 법치, 가치관과 언어까지 파괴하는 건 구시대에는 없던 ‘보너스’다.

문제는 무기력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야당마저 구시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왜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왜 그렇게 양보하고 ‘철수’했는지, 왜 다시 복귀해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는지…. 최근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몸에 잘 안 맞는 정치를 ‘패션’으로 시작했다가 생활이 돼버린 건 아닌가.

그런 안철수가 지금 서울시장 야권후보 지지율 1위다. 거칠게 말하면 안철수가 좋아서라기보다 국민의힘이 싫어서다. 아직도 국민의힘이 ‘그냥’ 싫다는 중도성향 유권자가 많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싫은 거보다 그냥 싫은 게 가장 무서운 거다. 정권을 뺏기고도 일평생 해먹은 듯한 기득권 이미지를 벗지 못한 보수 야당의 업보(業報)다.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중원(中原)으로 지지세를 넓히겠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략은 옳다고 본다. 복잡한 사안을 단칼에 정리하는 정무 감각도 좋다. 그렇다고 다른 정치인들을 ‘애송이’ 취급하는 듯한 그의 꼰대식 화법은 국민의힘에 또 다른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팔순의 김종인이 국민의힘을 이끈다는 것 자체가 보수 야당의 지체 현상을 상징한다.

그럴수록 김종인은 정치 신인과 젊은 정치인을 키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국민의힘에 씌워진 비호감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사람을 바꾸는 것만 한 게 없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곧 있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는 물론 향후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양보와 희생을 보여줘야 한다.

당에 젊은 피가 돌고, 양보와 희생을 실천해야만 보수야당을 4번 연속 전국선거에서 패배시킨 주범인 기득권 이미지를 타파해볼 수 있다.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다 죽었다가 조금 살 만해지니까 특유의 웰빙 본색을 드러내는 건 다시 죽는 길이다. 그래도 보수성향 유권자는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의힘을 찍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보수도 국민의힘 집토끼가 아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유물정치#구시대#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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