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마지막 선물, 누군가에겐 새 삶이 된다[광화문에서/신수정]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20-11-18 03:00수정 2020-11-18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딸이 크면 엄마가 장기 기증으로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꼭 얘기해 줄게요.”

올 8월 뇌사 판정 뒤 장기 기증으로 여러 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난 홍성숙 경사(42)의 남편 안치영 씨가 한 말이다. 부부에게는 19개월 된 딸이 있다. 홍 경사는 집에 오는 길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 판정을 받았다. 홍 경사 생전에 부부는 장기 기증을 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12일에는 부산의 한 호텔에서 현수막을 설치하다 추락해 뇌사 상태에 빠졌던 손현승 씨(39)가 3명에게 심장과 좌우 신장을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족들에게 손 씨의 장기 기증을 설득한 건 친형인 손봉수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였다. 손 교수는 “현승이의 일부가 다른 누군가의 삶 속에 살아 있는 것이 남은 가족들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2188명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많은데 장기 기증자 수는 몇 년째 제자리다. 뇌사 장기 기증자 수는 2016년 573명, 2017년 515명, 2018년 449명, 2019년 450명, 올해는 17일 기준으로 422명이다.

주요기사
현행법상 본인이 생전에 기증 희망 등록을 했어도 유가족 1인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이 불가능하다. 장기 기증을 지금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남은 가족의 동의를 얻는 게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뇌사 판정을 받은 2484명 중 실제 이식까지 이어진 뇌사자는 450명에 그쳤다. 가족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기증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국내 장기 기증 건수를 늘리려면 무엇보다 생명 나눔에 대한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증자와 유족의 자긍심을 높여줄 수 있는 기념공원 건립, 유족과 수혜자의 간접 교류 허용 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유족들은 수혜자를 통해 먼저 떠난 가족을 느낄 수 있다.

2016년 1월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김유나 양(18)은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유나 양은 27명에게 장기와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나 양의 어머니 이선경 씨는 최근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의 인터뷰에서 “유나의 심장을 이식받은 분이 편지와 함께 곰 인형에 이식받은 자기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해서 선물로 보내줬는데 상상 이상으로 정말 큰 위로가 되고 있다”며 “행여 고장이 날까 봐 지금은 휴대전화로 다시 녹음해서 듣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감동적인 장기 기증 이야기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이 문제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첫 번째 생일을 갓 넘기고 또래 친구들에게 심장 등을 선물하고 떠난 서정민 군이 그렇다. 서 군의 어머니 이나래 씨는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했는데 이식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단 얘기를 들었다”며 “그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잘 뛰어놀면, 다른 방식이지만 정민이가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결심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떠난 이들의 영면을 빈다.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crystal@donga.com
#천사#마지막#선물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