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맛, 그 치명적인 유혹[광화문에서/이헌재]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입력 2020-11-05 03:00수정 2020-1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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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2년 전 이맘때였다. 프로야구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트레이 힐만 감독(미국)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떠난 뒤 염경엽 당시 SK 단장(52)이 새 감독으로 임명됐다. 적지 않은 야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능력을 의심해서라기보다 타이밍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넥센(현 키움) 감독 시절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던 염 감독은 SK 단장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단장 부임 후 활발한 트레이드로 팀 전력을 강화시키는 등 제너럴매니저(GM)로서의 능력도 과시했다. 구단은 물론 그룹 고위층도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다만 SK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다. 전년도 우승팀 SK를 맡으면 목표는 최소한 우승이어야 했다. 염 감독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잘해야 본전인데… 허허,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라고 했다.

이후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SK는 2019시즌 막판 9경기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정규시즌 우승을 두산에 내줬다. 키움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탈락했다.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다. 올 시즌 초반 10연패하는 등 부진했고, 염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경기 도중 쓰러졌다. 건강을 추스른 뒤 시즌 막판 다시 돌아왔지만 몇 경기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자리를 비웠다. 시즌 종료 후 그는 조용히 ‘자진 사퇴’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명예와 실리를 모두 잃은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만큼 프로야구 감독은 매력적인 자리다. 공명심으로 볼 때 이만한 자리를 찾기 힘들다. 10개 팀 감독은 누구 못지않게 미디어에 자주 노출된다. 매 경기 감독들은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데 이들의 말은 거의 실시간으로 팬들에게 전달된다. 포스트시즌처럼 주목도가 높은 경기는 70명을 훌쩍 넘는 취재진이 몰린다. 야구는 이동일을 제외하곤 매일 경기를 하는 종목이다. 이 때문에 “국무위원이 누구인지는 잘 몰라도 누가 어느 팀 감독인지는 많이 안다”는 말도 있다. 대우도 잘 받는다. 초보 감독은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이 기본이지만 조금만 실적을 올리면 액수가 대폭 뛴다. KT를 창단 후 처음 포스트시즌으로 진출시킨 이강철 감독은 최근 3년 20억 원에 재계약했다. 차량을 제공하고, 아파트를 얻어주는 구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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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큰 감독의 매력은 그라운드 위 ‘절대 권력’이라는 점이다. 경기 중 수십 명의 선수와 코치들은 쉴 새 없이 그의 손짓을 확인한다. 사인 하나에 팀원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결정적인 순간 작전이 맞아떨어져 팀이 승리한다면? “세상에 그것보다 짜릿한 순간은 없다”는 게 감독들의 말이다. 수십 년 감독을 거쳐 구단 사장까지 지낸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몇 해 전 다시 감독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야구 감독과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반드시 해봐야 할 3대 직업으로 꼽힌다. 손짓 하나, 명령 한마디가 절대적인 자리들이다.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이맘때는 바로 그 절대 권력을 향한 ‘잠룡’들의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즌 중 감독이 물러난 한화, SK, 키움의 감독 자리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시즌이라는 전쟁 속에서 또 다른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프로야구 감독#sk#염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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