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다!”[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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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대학원 시절 논문 발표를 마치자 지도교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건 어디에 써먹을 건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나에게는 중요한 일인데….’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연구 주제의 참고문헌을 찾아본 적이 있다. 1930년대에 발표된 멋진 논문 한 편이 눈에 띄었다. 그 당시 이 논문을 쓴 물리학자는 어떤 생각으로 논문을 발표했을까. 중요한 것은 그의 과학적 접근이 지금 봐도 상당히 세련되고 앞서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당장 뭔가에 써먹기 위해 이 논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90년 후 찾아올 한국의 물리학자를 위해 비밀 편지처럼 남겨 놓은 것은 아닐까.

당장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연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연구도 있다. 심으면 금방 싹이 나는 씨앗도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 때가 되면 싹이 트는 씨앗도 있다. 물리학자는 당장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고독한 예술가처럼, 언젠가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연구에 몰입하기도 한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블랙홀 연구자 3명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수학적 이론 연구를 한 89세 노령의 영국 수학자 로저 펜로즈 교수, 블랙홀의 존재를 직접 관측한 라인하르트 겐첼 박사와 앤드리아 게즈 박사가 바로 그들이다.

펜로즈 교수의 업적은 블랙홀의 ‘특이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1965년 그가 34세일 때의 일이다. 처음에 그의 이론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조차 반대를 했다. 아인슈타인은 특이점의 존재가 기존 물리학 법칙에 어긋날뿐더러 그의 상대성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봤다. 하지만 55년이 지난 후, 지금은 펜로즈의 이론에 다른 평가를 내린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수학적 이론이 상대성 이론의 직접적인 결과를 독창적인 수학적 방법으로 증명한 것이고, 아인슈타인 이래 일반상대성 이론에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그 당시와 지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의 블랙홀 연구는 왜 중요할까. 그것도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계의 블랙홀 연구가 말이다.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진동할 때는 시공간에 전파가 전달된다. 이 파동을 중력파라고 한다. 전하를 띤 물체가 진동할 때 발생하는 파동은 전파다.

이 전파에 대한 이론은 19세기 중후반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만들어졌고,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에 의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이 두 사람의 과학적 발견으로, 지금과 같은 전파의 시대가 열렸다. 당시, 실험 장치로 전파를 만들어낸 헤르츠에게 한 학생은 이 전파를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헤르츠의 대답은 이랬다. “전파, 이건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전파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150년 전의 맥스웰과 헤르츠, 이 두 물리학자는 지금 우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반대로, 지금으로부터 150년이 지난 후 블랙홀과 중력파를 발견한 물리학자들은 과연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아마도 중력파로 연결된 세상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세상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대학원#논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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