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된 이유[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53〉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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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어떤 청년에게 왜 의사가 되지 않고 약사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의 답은 이러했다. “의사는 때로는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약사는 응급상황에서 약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경제적인 개념에서 접근하고 재단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그의 다음 말은 더 그랬다. “저는 라이촉(한센인) 마을처럼 필요한 마을에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다가가기 위해 약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젊은이는 마틴 마쿠라는 이름의 수단 약사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수단의 젊은이를 그렇게 속 깊은 약사로 만든 사람은 한국인 의사, 아니 신부였다. 의사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마다하고 성직자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2010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 그가 보여준 삶이 시골 소년을 약사의 길로 이끌었다. 소년은 신부가 세운 학교에서도 배웠지만 가족한테서까지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이 배웠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는 신부가 만든 브라스밴드를 통해서도 배웠다. 전쟁의 와중에서 아이들이 입은 트라우마를 음악으로 치유해 주려고 만들었다는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 그는 그 밴드의 단원으로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는지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어떻게든 약자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구수환 감독의 다큐영화 ‘부활’은 이태석 신부가 보여준 이타적인 삶을 기억하고 본받으려 하는 남수단의 젊은이들을 스토리의 중심에 놓는다. 영화는 버림받은 생명에 대한 신부의 사랑과 돌봄의 정신이 젊은이들을 통해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제목도 ‘부활’이다. 응급상황에서는 약이 더 빠른 대처 수단일 수 있다는 이유로 약사가 된 젊은이의 삶도 부활이긴 마찬가지다. 의사로서 경제학이 아니라 삶의 윤리를 가르쳤던 이태석 신부의 부활.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약사#청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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