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87년 민주화 이전으로 국회 시계 되돌린 與 상임위 독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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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21대 국회 원(院)구성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15일 법제사법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소속 의원들로 선출한 데 이어 나머지 상임위원장 인선을 강행한 것이다. 국회 부의장단 협의를 거쳐 선임되는 정보위원장은 통합당 몫 부의장 선출이 무산되면서 당분간 공백 상태로 남게 됐다.

이로써 민주화 이후 1988년 13대 국회 때부터 이어진 의석수에 따른 여야 상임위원장직 배분 전통은 32년 만에 깨지게 됐다. 미래통합당은 “1987년 체제가 이룬 의회 운영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라며 “1당 독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반발했다.

21대 국회가 출발부터 파행하게 된 출발점은 여당이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이라는 오랜 관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선 데서 비롯됐다. 법안 처리의 길목을 지키는 법사위원장의 위상은 단순한 상임위원장 한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운영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부여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여야 협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당이 야당 시절이던 18, 19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만큼은 야당 몫으로 남겨놓았던 것인데 여당이 단지 자신들이 176석을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짓밟은 것이다.

여당의 상임위 독식 강행은 앞으로 여야 협의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차기 대선 정국이 시작되기 전에 정책성과를 내야 할 시간이 1년도 남지 않았다고 보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아무리 정치 일정이 급하다고 해도 군사정권에서나 통용될 법한 일방적 강행 처리를 한 것은 우리만 옳다는 독선에 다름없다.

여당은 원구성을 강행한 뒤 곧바로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6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다음 달 3일까지 추경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속도전이다. 그러나 여당 뜻대로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추경만 해도 역대 최대인 35조 원 규모로 심사항목만 1200개가 넘는다. 민생과 직결된 슈퍼추경을 건성 심사한다면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여당이 일하는 국회를 명분 삼아 국회 운영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국회는 물론이고 국정의 정상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여야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 결렬#더불어민주당#상임위 독식#미래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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