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代作 무죄[횡설수설/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입력 2020-06-26 03:00수정 2020-06-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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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천지창조’. 구약성서 이야기를 41.2×13.2m 크기로 그려낸 세계 최대의 벽화는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려 눈과 목과 허리를 상해가며 완성한 걸작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벽화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협업해 그린 사실이 확인됐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서 ‘원작’은 반드시 ‘친작(親作)’을 뜻하진 않는다. 미켈란젤로 같은 대가들은 공방을 차려놓고 교회나 왕정에서 그림을 주문받아 밑그림을 그린 뒤 조수 여럿과 함께 색칠해 완성했다. 동료 작가에게 ‘외주’를 주는 화가도 있었다. 루벤스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그리면서 간을 빼먹는 독수리를 동물 화가에게 맡겼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90점 가운데 절반은 스승의 자화상을 보고 제자들이 그린 것이다. ‘원작=친작’이라는 공식이 통용된 건 18세기 말 시민혁명 이후다. 그림의 소비층이 시민계급으로 바뀌면서 회화는 대형 공방 프로젝트가 아닌 예술가 1인의 작업이 됐다.

▷20세기 현대미술에서 ‘원작=친작’ 공식은 다시 깨진다. 이미지보다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아이디어와 물리적 실행이 분리된 것. 데이미언 허스트는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로 채운 수족관에 넣은 작품을 약 120억 원에 팔았는데, 상어가 썩자 새로운 상어로 대체해줬다. 이를 원작과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은 있었지만 그가 직접 상어를 설치한 게 아니니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문제 제기는 없었다. 현대미술에서는 조수가 100% 대작한 경우까지도 원작으로 봐준다.


▷화가이자 가수 조영남 씨(75)에 대한 25일 대법원 판결은 현대미술의 작품 개념에 부합한다. 조 씨는 화투 아이디어를 주고 조수에게 그려오게 한 뒤 가벼운 덧칠로 완성해 자기 작품으로 팔아 사기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조수는 조 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원작이 반드시 직접 그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자도 친작으로 오해해 샀다고 보기 힘들다는 취지다. 미학자 진중권 씨는 친작만을 원작이라 여기는 것은 ‘미학적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풍부한 면모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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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남에게 아이디어만 주고 그리게 한 후 조금 손봐서 내 이름으로 팔아도 된다는 논리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조수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미술에서 원작의 정의를 미술계가 아닌 법정에서 내리게 돼 씁쓸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조영남#로마 시스티나 성당#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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