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살리는 일보다 급한 게 뭔가[오늘과 내일/신연수]

신연수 논설위원 입력 2020-06-11 03:00수정 2020-06-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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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2만4000건에 부모가 77%
정부가 부모교육과 육아지원 나서야
신연수 논설위원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나중에 청석골 두령이 된 사람 중 한 명이 우는 아이를 달래다 못해 패대기쳐 숨지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부인이 출산하다 사망하자 혼자 아기를 보느라 쩔쩔매다 살인을 한 후 도망가 화적이 된다. 천하장사라도 우는 아기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적성인 듯 세 명, 네 명씩 낳아 씩씩하게 잘 기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우울증에 걸린 여성도 여럿 봤다. 젊은 엄마의 경우 ‘독박육아’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다거나, 그런 자신에 대해 “난 엄마 될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다가 우울 증세까지 보인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친지들이 도와주는 중산층도 이러한데, 손 벌릴 곳 없는 저소득층이 겪는 어려움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기를 낳아 젖 먹이는 일부터 씻기고 재우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은 처음 겪는 부모에게는 정말 낯선 일이다. 아기가 왜 우는지, 좀 자라서는 왜 말을 안 듣고 떼를 쓰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하기도 힘들다. 대가족이 많았던 예전에는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어른들이 지혜를 나눠줬지만 지금은 필요할 때 부모를 도와줄 사람이 거의 없다.


아홉 살 아이를 여행가방 속에 7시간 넘게 가뒀다가 숨지게 한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라’는 청원이 잇따르고, 이미 학대 정황이 있었는데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이 빨리 아이를 분리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비판도 나온다. 훈육이 아니라 잔혹하게 아이를 죽게 한 범죄자들은 마땅히 중벌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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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격리와 처벌만이 능사일까. 사회가 좀 더 일찍부터 그 가정에 개입해 부모를 교육시키고 육아 지원을 해줬다면 그런 처참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동학대는 2018년 확인된 것만 2만4600건에 2만18명이나 됐고, 이 중 28명은 사망했다. 가해자의 77%가 부모였다. 가해자는 소득이 없거나 무직인 경우가 많고 육아 방법에 무지했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부모가 연약한 아이에게 폭력을 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동학대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관련 부처들은 그 흔한 ‘대책’ 하나 안 내놓고 있다.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여성가족부는 권한과 예산이 없다고 뒤로 빠져 있다. 보건과 복지는 다르므로 차제에 여가부와 복지부를 합치고 보건부를 따로 떼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나랏일을 하는 정책당국자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나이 든 남성들이라 육아의 고달픔과 중요성을 모르고 ‘가정일’이라거나 ‘아이는 저절로 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어린 국민들이 죽어 가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국가가 왜 필요한가.

더 이상 아동학대를 개인적인 일로 여기고 그때만 분노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좀 더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등 월 30만∼40만 원을 주고 있지만 돈만 뿌린다고 아이가 저절로 크는 것 아니다.

출산 전 부모에게 육아교육을 의무화하고 교육 이수와 육아 모니터링을 아동수당과 연계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부모교육과 육아지원은 일자리도 많이 만들 것이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거나 체벌에 관대한 제도와 문화도 바꿔야 한다. 아동학대 예방과 대처 시스템 구축에 더 많은 예산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 해 겨우 30만 명 태어나는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아동학대#육아교육 의무화#부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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