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애국에 보수·진보 없다”며 정작 역사전쟁 불 지핀 현충일 추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7일 00시 00분


코멘트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식의 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국보훈을 통해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국민 통합을 호소한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경제 발전 공과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 발전의 공을 서로가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또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한 나라는 미국이었다”며 한미 동맹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념 갈등이 극심한 현실에서 문 대통령이 국민 통합과 한미동맹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느닷없이 의열단 활동으로 알려진 ‘김원봉’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이 광복 후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김원봉은 1948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52년 3월엔 김일성으로부터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최고 상훈의 하나인 노력훈장까지 받았다. 광복군의 국내진공 작전에서 김원봉은 사실상 역할을 한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역사학계의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김원봉의 행적을 6·25 순국용사들을 기리는 현충일 추념사에 넣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군 창설과 한미동맹의 뿌리를 서술하면서 김원봉을 거론한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에 대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김원봉 서훈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반발했다. 대통령 추념사가 주된 맥락인 국민 통합을 위한 메시지로 전달되지 않고 새로운 보수와 진보 갈등의 불씨를 던진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자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과거 행적이 논란에 휩싸인 인물에 대한 평가는 더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현충일 추념사#애국#보수#진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