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기자의 청와대 풍향계]대통령은 왜 조국 수석을 놓지 못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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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1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조국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는 1일 “민정·인사 라인에 특별한 문제가 파악된 것은 없다”며 조국 수석 경질론을 일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 11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조국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는 1일 “민정·인사 라인에 특별한 문제가 파악된 것은 없다”며 조국 수석 경질론을 일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30일, 평소 토요일과 달리 청와대는 긴박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강기정 정무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등 핵심 인사들이 속속 출근했다. 전날 받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긴급 보고 때문이다.

하루 전인 29일 오후 청와대는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카드를 버리기로 가닥을 잡았다. ‘25억 건물 구입’ 논란에 휩싸인 김의겸 전 대변인이 사퇴한 상황에서, 주택 3채를 보유했던 부동산 정책 주무 장관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동호 전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팀의 전갈이 청와대를 뒤집어 놓았다. “조 후보자가 스페인에서 열린 부실 학술단체 학회에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는 것이다.

결국 30일 회의에선 두 후보자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청와대는 알려진 대로 자진 사퇴와 지명 철회를 섞기로 했다. 특히 조 전 후보자에 대해서는 “검증 과정에서 후보자가 관련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의 부실 검증을 막아주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 없다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1일 브리핑에서 조 수석 경질론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지 모르겠다”며 쐐기를 박았다.

문 대통령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조국 수석을 지키려는 것일까. 청와대에선 “조 수석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차원이 다르다”며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남다른 관계를 설명한다. 실제로 두 남자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다른 참모들에게는 없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정치적 인연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재·보선 패배로 사퇴 위기를 맞았다. 문 대통령이 SOS를 치자 조 수석은 서울대 교수직을 걸고 당 혁신위 간판으로 나섰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한 대만 더 맞으면 나락으로 빠져들 것 같던 자신의 곁을 지켰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고 전했다.

‘PK(부산경남) 민주화 재건 기수론’도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남다른 관계를 읽는 핵심 키워드다. PK 민주화 세력을 1987년 민주화 항쟁 이전 수준으로 재건하겠다는 것은 ‘친노(노무현)’ 그룹의 숙원이자 “나는 새로운 세대의 출발을 위한 막차가 되겠다”는 대통령 문재인의 포부와 맞닿아 있다. “정치는 안 한다”고 선을 긋고 있는 조 수석 역시 출마는 못 해도 PK 사수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은 내비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더라도 부실 검증 책임자라는 멍에 대신 PK 재건의 총책임자라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씌워 내보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법 개혁 어젠다에 대한 조 수석의 남다른 의지를 꼽는 사람들도 많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잇따른 인사 참사로 그를 고깝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지만 청와대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모습에 여전히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 수석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당신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3·8개각’으로 거세진 책임론에도 여전히 말문을 닫고 있는 조 수석을 보면서 이런 평가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청문회장에 선 7명의 후보자는 너나없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검증을 책임졌던 조 수석은 사과 한마디 없이 청와대의 방어막 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조 수석은 지난해 11월 25일 페이스북에 “정치, 정책은 ‘결과책임(Erfolgshaftung)’을 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공직자는 ‘선한 의도’가 아닌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 수석에게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조 수석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와 국민 평가의 괴리가 커지면, 이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조국 민정수석#최정호#김의겸#3·8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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