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아래서]〈8〉말 안 통하는 고집쟁이 두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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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신이현 작가
“그럼, 마음대로 해도 돼. 밭 주고 난 뒤에 주인이 와서 뭐라 하면 안 되지. 우리는 절대 그런 것 간섭하는 사람 아니야.”

사과밭을 임대해줄 때 어르신이 이렇게 약조를 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어르신 집이 사과밭 코앞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섭하고 싶지 않아도 오다가다 보면 우리가 사과밭에 무슨 짓을 하는지 다 보인다.

“그런데 내가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나무에 달린 저것들은 다 뭐지?”

어느 날 어르신이 사과나무에 달린 새집과 마른 지푸라기로 채운 통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과밭을 얻은 뒤 레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과나무에 새집 다는 일이었다. 나무를 자르고 구멍을 뚫고, 직접 만든 새집이었다. 어르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과수원 하면서 지금까지 그는 새들을 쫓느라 별짓을 다 했다. 그런데 사과밭에 새를 부르는 미친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지푸라기로 꽉 채운 저 통은 대체 무엇인지….

“박새 집이래요. 박새는 하루에 해충을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 치운대요. 물론 사과도 좀 먹겠지만…. 저 지푸라기 통들은 벌레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진드기 같은 걸 잡아먹고 다시 바닥까지 내려오지 말고 그냥 저 통에 들어가 쉬라고 달아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벌레들을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죠.”

레돔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설명하자 어르신은 으흠, 기침을 했다. ‘살다보니 별 괴상한 소리도 다 듣는군. 내 사과밭 30년 했지만 이런 짓은 평생 처음 본다.’ 그런 표정이었다. 며칠 후에는 동네의 다른 어르신이 올라왔다. 레돔이 사과나무 둥치에 아르질(argile) 반죽 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가만히 보고 있더니 천천히 다가와서 한마디 했다.

“아니, 이 하얀 뺑끼는 뭔가. 나무에 이걸 왜 칠하는데?” “뺑끼 아니고 백토인데요. 병든 나무에 칠을 하면 병이 깊어지지 않고, 해충이나 나쁜 것들이 상처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한대요. 자연치유제예요.”

자, 자연 뭐? 어르신은 흠흠, 표정 관리를 했다. 더벅머리 외국 남자가 매일 사과밭에 와서 무슨 일을 하기는 하는데, 아주 열심인 것은 분명한데, 약도 안 치고 퇴비도 안 하니, 이러면 사과는 한 알도 못 건질 게 분명한데 대체 어쩔 심산인지…. 동네 어르신들은 걱정이 많았다. 말이 안 통하니 멀찍이서 보고만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홀연히 다가와서 벼르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면 레돔은 나에게 동네 어르신들이 자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호기심을 뿜으며 물었다. 자기를 괴짜 프랑스 놈으로 본다고 말하면 화가 나서 펄쩍 뛰겠지.

“그런데 사과밭에 난 이 풀들은 다 어쩌려고 해? 아이쿠, 동네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서 말이지…. 내가 쓰다 남은 제초제가 있는데 가져와서 좀 쳐봐봐. 싹 죽어버려.”

수북한 풀을 보니 나도 부끄러워져서 레돔에게 당장 베라고 했더니 그는 폰을 열어 일기예보를 체크했다. 가뭄이 계속될 때 풀은 더디게 베는 게 좋다, 싹 베어 버리면 벌레들이 갈 곳이 없다, 등등의 이유로 아직은 풀을 벨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어르신은 당장에라도 제초제를 가지고 와 뿌려줄 태세를 하고 내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초제라는 말이 나오면 레돔은 벌컥 화를 낼 것이고, 어르신도 자신의 깊은 뜻이 묵살되었음을 아는 순간 농사라고는 모르는 프랑스 놈에게 분개할 것이다. 고집쟁이 같은 두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먹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나는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에 주섬주섬 먹을 것을 꺼내며 한마디 했다.

“어르신, 더운데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드실래요?”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사과#박새#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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