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안전立法 14개월 방치해놓고 저열한 ‘네 탓’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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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에는 소방안전 관련 5개 법안이 계류돼 있다. 대부분 발의된 지 1년이 넘었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차 전용구역에 일반 차량을 주차하면 최대 2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원안이 발의된 것은 2016년 11월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0년 부산 해운대 화재, 2015년 의정부 화재 때도 이런 내용의 입법 필요성이 수없이 강조돼 왔다.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위한 방염 처리를 더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한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도 2016년 11월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다. 국회가 이 법안들을 제때 처리했다면 제천, 밀양 등에서 숨져간 무고한 희생자 중 상당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권이 이들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1년 넘게 법안을 방치해온 국회는 지난해 12월 21일 제천 화재가 발생하자 이달 10일 행정안전위원회를 열어 부랴부랴 법안 처리에 나섰다. 오전에 소위, 오후에 전체회의를 열어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속기록을 보면 반대의견 없이 일사천리로 의결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피해를 볼 이해당사자나 부작용 우려도 거의 없는 법안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본회의 일정을 안 잡은 탓에 이 법안들은 아직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의원 보좌진을 증원하는 법안은 운영위 심의 7일 만에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킨 바 있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일엔 그토록 적극적이면서 정작 민생에 직결되는 입법은 방치해 버리는 국회의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법안들을 방치해온 데 대해 정치권이 뼈저리게 자성하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들리지 않는다. 26일 밀양 화재 직후 경쟁적으로 참사 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은 ‘네 탓’ 공방을 일삼았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고,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직전 이곳 행정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느냐”며 경남도지사를 지낸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겨냥했다. 이후 이틀 동안 이어진 여야 공방은 너무도 저급해서 지면에 옮기기 민망한 수준이다.

안전불감증과 법·제도 부실로 인한 대형 참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국민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정치권의 대응은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더 저열한 행태로 치닫는다. 대형 참사가 터지고, 정치권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부랴부랴 대책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또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소방안전 법안들이 방치돼온 경위를 소상히 규명하고 관련된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소방안전 법안#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의무화#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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