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에 사는 대만계 미국인 티나(59)는 한국식 표현으로 돼지 엄마. 아들 2명을 모두 아이비리그(미 동부 8대 사립 명문대)에 보냈다. 첫째 며느리도 하버드대 출신. 중고교생을 둔 아시아계 이웃 엄마들이 ‘돼지 새끼처럼’ 그를 잘 따른다. 20년 전 남편은 대만계 은행의 뉴욕지점 책임자였다. 티나 부부가 미국 땅에 눌러앉기로 결심한 건 큰아들 때문이었다. “중학생이었는데요. 미국 온 지 1년 만에 전 과목 A학점을 받으면서 탁월한 학업능력을 보였어요. 대만에 계신 시아버지조차 ‘아이를 위해 너희(티나 부부)가 희생해라’고 하셨죠.” 영주권에 이어 시민권까지 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명문 공립고교가 있는 좋은 학군에 계속 살기 위해 뉴욕의 미친 월세를 감당해야 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았죠. 다만 애들 아빠의 삶이 초라해졌어요. 귀국했으면 출세가도를 달릴 분이었는데….” 티나 남편은 다른 현지 은행의 하급 매니저로 재취업해야 했다.
티나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한국에선 흔하디흔하다. 집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지만 큰아들을 명문고교로 보내려고 강남구 월세로 갔다가, 2년 만에 둘째아들을 위해 서초구 월세로 옮긴 한 엄마(48). “장남은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똑똑한 여학생들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이 컸어요. 그래서 둘째는 남자만 있는 고교로 보냈죠.” 외국어고나 서울 강남의 명문고교 등에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10명 넘게 전학을 간다고 한다.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좋은 대학 가기 좋은 고교’를 다시 찾아 이사한다.
한 대기업 임원(49)도 다른 듯 같은 경우. 그는 서울 양천구의 낡은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고 있다. 친구나 지인이 그 집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깜짝 놀랄 정도. 그의 높은 연봉과 아파트의 열악한 환경이 어울리지 않는다. “재수생인 큰아이, 고교생인 둘째가 수년째 다니는 유명 학원이 집에서 가깝다. 그래서 이사 갈 수 없다.”
‘대전’(대치동 전세)에 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전셋집을 구할 수 없어 ‘대월’(대치동 월세)에 산다는 한 시중은행 지점장(52)은 말한다. “대입 수험생 학원 때문에 대치동에 입성했다. 살아 보니 여러 면에서 정말 좋더라. 대전 대월 말고, 집을 구입해 진짜 대치동 주민이 되고 싶다.”
정부의 ‘8·2부동산대책’은 초강력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다. 주요 표적은 당연히 서울 강남. 그러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택 구입 시 고려사항’은 교통 환경(52.4%), 주변 경관 쾌적성(16.3%), 지역 발전 가능성·투자 가치(11.9%), 주변 편의시설(10.0%), 학교·학군(5.1%), 가격(3.1%) 순이다. 이 조사에서 취학연령 자녀를 둔 ‘30대 후반’의 경우엔 학교·학군(17.0%)이라는 응답이 가격(2.0%)의 8.5배에 이른다. ‘학교·학군이 좋으면 아파트 값을 약 10% 더 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기자가 만난 강남 주민들은 한결같이 느긋하다. 좋은 학교 몰려 있는 ‘강남 불패’는 신화가 아닌 현실이란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그 뒤에 남는 건 더 올라간 집값일 것이란 학습효과가 널리 퍼져 있단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친 전세, 미친 월세 부담에서 서민들을 해방시킬 카드’가 주머니 속에 많이 있다고 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그 주머니를 채운다고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 주머니에 자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한국의 ‘맹자 엄마’ ‘맹자 아빠’들 현실은 얼마나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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