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28>농민인 듯 농민 아닌 듯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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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을 창업하듯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농(創農)’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에 자리한 친환경 달걀 생산 협동조합의 귀농 청년들. 동아일보DB
벤처기업을 창업하듯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농(創農)’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에 자리한 친환경 달걀 생산 협동조합의 귀농 청년들. 동아일보DB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난 자연인이다. 난 농부다.’

조금 쑥스럽지만 필자의 명함 맨 상단에는 이런 소개 글귀가 적혀 있다. 2010년 가을 강원도 홍천 산골에 들어와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나름 진정한 자연인이자 농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표현이다. 귀농·귀촌 열풍이 점화된 2009년 이후 농촌으로 내려온 이들 중 상당수는 필자와 같은 열망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요즘엔 도시민들의 농촌 유입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지원책과 더불어 농민을 위한 지원제도가 많지만 문제는 아직 현장과 동떨어진 제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제도들은 농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농민은 그냥 농사만 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엄연하게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농민(농업인)’ 지위를 얻어야 한다. 여러 가지 요건이 있지만 농촌에 살면서 1000m²(약 303평) 이상의 농지를 확보해 직접 농사를 지으면 일종의 농민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는 ‘농지 원부’와 ‘농업 경영체’ 등록이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농민 지위를 획득하면 각종 세금 감면, 보조금, 면세유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 중에 몇 개 허점이 있다. 두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우선 국민연금 문제다.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된 농민은 정부(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월 3만8250원)를 지원받는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농사를 해서 얻은 농업소득이 농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얻은 소득(농외소득+이전소득)과 같거나 많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비농민’으로 분류되어 국고 보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농사일을 한 지 얼마 안 돼서라든지 해서 농업소득이 별로 없는 경우엔 농민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 오히려 보험료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금계산을 할 때 농업소득이 농외소득보다 적다면 일단 같은 것으로 추산해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업소득이 10만 원이고 농외소득이 100만 원이었다면 총소득을 계산할 때 농업소득을 무조건 농외소득과 같은 100만 원으로 해서 이를 합친 200만 원을 과표로 잡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올라갈 수 있고 연금 지원 혜택도 받기 어렵다.

이런 규정 때문에 초보 농민 중에는 국민연금 보조금을 포기하고 ‘비농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초보 농민들은 “귀농 초기에는 농업소득이 미미할 수밖에 없으니 대다수 초보 농민들은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사실 귀농 초기 2, 3년까지는 농사지어 적자만 면해도 다행이고 그 이후에도 기대만큼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해 평균 농가 소득은 3452만4000원이었는데 농업소득은 29%인 1003만 원에 불과했다. 농업소득만을 가지고 농민, 비농민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고, ‘농업소득이 더 많아야 농민’이라는 잣대 또한 현실과 맞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도 “귀농인의 경우 정착이 가능할 때까지 일정 기간은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귀농인의 자격을 규정하는 조항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재 귀농·귀촌 지원책은 귀농인(농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창업자금, 주택신축자금 등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농민 요건 외에 별도로 ‘농어촌 이주 직전 1년간 농어촌 이외 지역에서 거주한 자’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농어촌이란 행정구역상 전국의 읍면 지역이 모두 해당된다. 읍면이 아닌 동 지역에서 1년 이상 살았어야 귀농인임을 인정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던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주소지가 경기 화성시 봉담읍, 광주시 오포읍 등 읍면 지역이라면 이주 직전 주소지가 농어촌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은퇴 후 농사를 짓겠다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도 귀농인 자격을 얻을 수 없고 지원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귀농인으로 인정받아 지원을 받으려면 귀농 직전 동 단위의 도시에 나가 살다 오거나 위장전입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1만 명)를 필두로 한 귀농·귀촌 행렬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돌파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 제도가 이를 못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다행히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법이 제정되면 그동안 지침 등에 따라 이뤄지던 정책들이 보다 법률적으로 체계화되어 지원도 현실을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농민#농사#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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